“가족들과 고깃집에 갔는데 주변 테이블에서 ‘흑백요리사’ 얘기를 하더라고요. 진짜 많은 분이 좋아하는구나 느꼈어요.” (김학민 PD)
요리 서바이벌의 인기를 다시 지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의 열기를 실감하는 건 제작진도 예외일 수 없다. 가는 곳마다 ‘흑백요리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제작진의 귀에도 들린다.
성공적으로 시즌1를 마친 3명의 제작진을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학민, 김은지 PD와 모은설 작가에게 ‘흑백요리사’를 둘러싼 궁금증에 대해 물었다. 시즌2의 계획부터 시즌1에서 제기된 각종 논란, 요리를 계급으로 나누는 설정에 대한 반감과 우려 등이다. 제작진은 다소 민감한 이슈에도 가감없이 답했다.
모은설 작가는 “커뮤니티를 통해 잠잠했던 요식업계가 들썩이고 있다는 글을 봤다”면서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려고 적금을 든다는 얘기도 들었다. 파인 다이닝이 비싸기만 하고 먹을 가치가 있는지 몰랐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셰프들이)진심을 다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는 글을 보고 뿌듯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8일까지 12부작으로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지만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 ‘흑수저’ 요리사 80명이 여경래, 박준우, 최강록, 정지선, 이영숙, 최현석, 에드워드 리 등 최고라고 손꼽히는 20명의 ‘백수저’ 요리사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대결 구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각종 블라인드 테스트, 평범한 식재료 두부를 이용한 무한요리지옥 등 다채로운 미션을 넘어 감동적인 스토리로 요리를 완성한 출연자들의 출중한 실력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유명 외식사업가인 백종원 대표(더본코리아)와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모수 서울’의 수석요리사 안성재 셰프의 날카롭고 냉철한 심사도 인기에 불을 지폈다.
인기는 국내서만 머물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예능 가운데 처음으로 3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 궁금증①… ‘준우승’ 에드워드 리에 쏟아지는 관심, 제작진도 예상했나
‘흑백요리사’는 결승전을 통해 ‘흑수저’의 나폴리 맛피아가 ‘백수저’ 에드워드 리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나폴리 맛피아는 이탈리아 음식을 전공한 권성준 셰프다.
치열한 경합 끝에 1, 2위가 나뉘었지만 오히려 준우승을 한 에드워드 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미교포 2세인 에드워드 리는 서투른 한국어로 요리를 향한 진심과 열정을 드러냈고, 이런 모습이 시청자의 마음에 다가갔다. 요리의 맛뿐만 아니라 음식 철학과 미국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인간미가 호감을 얻고 있다.
모은설 작가는 “현장에서 편집본을 보면 각 라운드마다 돋보이는 인물이 달랐다”면서 “100명의 셰프를 모은 건 단지 인원수 때문만은 아니다. 다채로운 서사와 다양한 요리를 하는 분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승자만 돋보이지 않고 많은 분들이 응원을 받는데 저희 제작진이 가장 바랐던 부분”이라고 반겼다.
김학민 PD 역시 “(서바이벌을 통해)1등만 주목받는 게 아니라 이제는 준우승자도 인정을 받는” 현상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현석 셰프가 자신의 가치관을 충분하게 어필한 프로그램이라고 만족해 했어요. 요즘 서바이벌은 참가하는 분들의 성적만큼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시청자가 더 관심 있게 보는 것 같고요.” (김학민 PD)
● 궁금증②…논란의 팀원 방출에 대한 제작진이 변
뜨거운 인기만큼 논란도 따랐다.
팀 대결로 이뤄진 4라운드에 나온 ‘레스토랑 운영 미션’의 경우 공정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준비 과정에서 투표로 팀원을 한 명씩 방출하고, 방출된 셰프들이 새로운 팀을 꾸려 대결을 펼치는 내용이 프로그램 기획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맛’을 기준으로 심사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어긋나고 방출된 셰프가 다시 요리를 하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체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우려가 제기됐다.
김학민 PD는 “경쟁의 여러 면모를 부각하려고 진행한 미션이었다”면서도 “시청자가 걱정하는 부분을 알고 있어서 다음 시즌에는 (팀원)방출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은지 PD 역시 “(시청자들은)셰프들의 진검승부를 좋아하고, 팀 대결을 연속으로 하는 건 선호하지 않은 것 같다. 향후 라운드를 구성할 때 이런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 궁금증③…’흑백요리사’ 시즌2 확정, 고든 램지 출연하나
넷플릭스 측은 15일 시즌2 제작을 확정하고 내년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제작에 돌입했다고 알렸다. 시즌1의 제작진이 다시 의기투합한다.
김은지 PD는 “방송이 지난주에 마무리된 만큼 시즌2 관련 회의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면서도 다음 시즌에서는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선호했던 부분과 선호하지 않았던 부분을 알고 있기에 이를 잘 반영해서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학민 PD는 심사위원 백종원 대표와 안성재 셰프를 시즌2에서도 반드시 섭외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아직 시즌2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단계가 아닌 만큼 어떤 말을 하기 어렵지만 꼭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거듭 바랐다. 모은설 작가는 “시즌2에는 고든 램지를 모시고 싶어 연락까지 넣은 상태”라고 귀띔했다. 고든 램지는 셰프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 영국의 요리사.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스타 셰프다.
“시즌1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요리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시즌2도 비슷한 방향이지 않을까 해요. 시즌1을 준비할 땐 섭외가 너무 힘들었어요. 콘셉트를 얘기할 수 없어서 ‘저희를 믿어주세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거든요. 이제 저희를 알지 않을까요. 섭외가 수월해지길 바랍니다.” (김은지 PD)
● 궁금증④…안대 쓴 백종원, 안성재의 “익힘 정도” 등 밈 유행 예상했나
‘흑백요리사’를 통해 수많은 패러디와 다양한 ‘밈'(Meme)이 쏟아지고 있다. 안대를 쓴 백종원과 일본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의 캐릭터 고죠 사토루(주술사로 안대를 쓴 캐릭터)를 합성한 이미지와 영상이 유튜브 등 각종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들의 1대1 대결을 벌이는 2라운드는 오직 맛으로만 심사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걸맞게 백종원과 안성재 심사위원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블라인드 심사를 했다. 특히 안대를 쓴 백종원의 모습이 강렬했다는 평가다.
또한 안성재 셰프는 특유의 말투인 “~거덩요”, 출연자들에게 매번 강조한 “채소의 익힘 정도”가 유행어로 떠올랐다. 이러한 2차 가공 콘텐츠로 ‘흑백요리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견들도 눈에 띈다.
모은설 작가는 안대를 쓴 백종원에 대해 “무조건 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녹화 날 두 사람이 안대를 쓴 걸 보고 모든 제작진이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느꼈고, 무조건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요식업계 왕’으로 불리는 백종원과 ‘셰프들의 꿈’인 안성재의 만남 또한 프로그램의 인기를 이끌었다. 김은지 PD는 “두 분이 걸어온 길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부터 정반대인 걸 알았다”면서 “안성재 셰프는 백종원 선생님도 못 만났을 것 같은 캐릭터다. 그래서 확신을 가졌다”고 두 명을 심사위원으로 둔 이유를 설명했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호흡이 좋았어요. 누가 백종원 선생님과 대등하게 건전한 토론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안성재 세프밖에 없더라고요. 무조건 이 두 분이어야 했죠.” (김은지 PD)
● 궁금증⑤…맛으로 나누는 요리 계급, 출연자들의 반감 없었나
‘흑백요리사’는 요리로 무명요리사들의 계급을 나누는 서바이벌이다. 흑수저 계급은 백수저 계급과 다르게 진짜 이름이 아닌 자신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불렸다. 제작진은 출연자를 섭외할 때 이러한 프로그램의 취지를 먼저 밝히지 않았다. 김은지 PD는 흑수저에 해당하는 80명의 셰프가 백수저 계급인 20명의 출연자들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인정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1회에서)이 규칙을 듣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했죠. 사실 한두 분은 나갈 거라고 각오했어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가 결승전 만큼이나 긴장됐죠.”
“의외로 모든 세프가 그 설정을 받아줬습니다. 경력이 있는 사람들(백수저)에 대한 대우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시청자의 눈에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우해야 할 사람은 대우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요즘 시대에 맞는 서바이벌이지 않을까요.” (김은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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