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가 밥을 먹는 것일 뿐인데 뭐가 재밌을까요? 다큐멘터리처럼 공복 상태의 아저씨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뿐이지만, 여러 드라마에 질리거나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이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게 아닐까 합니다.”
3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만난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의 말이다. 2012년 첫 방송 이후 시즌10까지 제작된 ‘고독한 미식가’는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쌓아온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화됐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된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이날 오후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지난 2일 열린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건낫토(말린 낫토)를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마츠시게는 “영화에서 제가 연기한 고로가 비행기에 탄 뒤 졸아서 건낫토를 어쩔 수 없이 먹는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제가 먹은 음식이 건낫토라는 걸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동명의 일본만화가 원작인 ‘고독한 미식가’는 고로라는 이름의 한 중년 남성이 사업차 방문한 곳에서 식당을 찾아 만족스러운 한 끼를 위해 ‘필사적으로’ 식당을 찾은 뒤 혼자 식사하는 내용의 간단한 콘셉트의 드라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매력 있는 식당을 찾아서 음식을 소개하며 ‘먹는 행위’ 그 자체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덕분에 고로는 ‘혼밥러'(혼자 밥 먹는 사람)의 대명사가 됐고,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배가 고프다”는 대사는 유행어가 됐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이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마츠시게가 이노가시라 고로 역으로 출연한 것은 물론 각본도 쓰고, 연출까지 했다.
● “봉준호 감독도 기대한다고…”
이날 마츠시게는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이유에 대해 “드라마는 12년 동안 계속됐다. 사실 일본 TV 업계가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니다. 인재가 다른 업계로 유출되는 위기도 느끼고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면서 “일본 드라마에 자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과 영화를 한 편 했는데, 무모하지만 편지를 보냈다. ‘한국에도 아는 분이 많으니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썼다”며 “감독님이 ‘일정이 맞지 않아서 어렵지만 완성되기를 기다리겠다’고 답장해 줬다”고 설명했다.
마츠시게는 2008년 봉준호 감독이 레도 카락스 감독과 공동 연출한 ‘도쿄!’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이번에 봉 감독으로부터 받은 답장은 그를 자극했다.
“봉준호 감독님이 기대하겠다고 하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감독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한 마츠시게는 “리더십을 가지고 팀을 성장시키는 것도 재밌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처음 장편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공개했다.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고, 힘들었고, 스릴이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찍을 땐 스태프들이 마련한 자리에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됐죠. 영화는 제가 전부 생각해야 하고 시나리오도 짜야 했어요. 완전히 다르게 머리를 썼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이상의 기쁨이 있었어요. 제가 61살입니다. 남은 인생이 별로 길지 않은데 이렇게 즐거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걸 즐기고 있어요.“
영화에서 고로는 옛 친구의 딸 치아키의 연락을 받고 파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죽기 전에 어린 시절 먹었던 어떤 국물의 맛을 꼭 다시 맛보고 싶다는 치아키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고로는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없는 그 국물의 정체를 찾아 일본을 헤매고 폭풍 속에 표류하다 한국까지 온다.
거제도와 남풍도가 영화에 등장한다. 고로는 한국에서 닭보쌈과 황태해장국, 고등어구이를 맛본다. 마츠씨게는 “시나리오 작성 때부터 푸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았고, 함께 바다마을을 여러 곳 돌아보며 한국의 여러 음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 “맛집 추천? 비밀로 하고파…”
영화에 나오는 한국 내용에는 배우 유재명이 출연한다. 마츠시게는 유재명이 주연한 영화 ‘소리도 없이’를 보고 “좋아졌다”고 고백하면서 팬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유재명이 등장하는 부분에 감독으로 각별한 애정도 보였다. “웃음을 자아내는 구간”이라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식으로)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그리고 싶었다. 그걸 유재명과 함께 표현한 게 영화의 최대 성과가 아닐까 한다”고 만족을 표했다.
12년 동안 ‘먹는’ 드라마를 찍었지만 마츠시게는 여전히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을 묻자 “살이 찌는 체질은 아니지만, 일과 중에 걷기가 있다”면서 “오늘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심박수를 높이기 위해 해운대 주변 6km를 걷고 왔다”고 답했다.
마츠시게는 현재 ‘고독한 미식가’의 새로운 시리즈(시즌11)를 촬영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맛집’을 추천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맛있는 가게는 비밀로 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도쿄에서 촬영 중인데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이 두 곳 정도 있다“면서 “방송에서 다루면 저도 예약을 못한다. 방송 전에 아내와 슬쩍 갈 생각”이라고 미소 지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일본에서는 내년 1월, 한국에서는 3월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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