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 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는지 뜨거운 질문이 오갔다.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부국제) 개막작인 ‘전, 란’의 기자회견이 김상만 감독과 배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모데레이터로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나섰다.
‘전, 란’은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영화 최초로 부국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왜 부국제가 OTT 작품을 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개막작으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이 영화를 처음 후보작으로 봤을 때 재밌게 봤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면서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이라 모험이었지만 시도해 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는 그동안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해왔는데, 그 기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대중성을 생각했을 때 OTT 작품이든 아니든, 그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10년 만에 영화를 찍게 돼서 설레었는데, 개막작으로 선정이 됐다고 해서 마음 한편으로 안심을 했다”던 김상만 감독은 “훌륭한 배우들과 즐겁게 촬영을 했다”며 남다른 소회를 공개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전, 란’이 왜 개막작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객관적으로 작품을 봐야 할 필요가 있지만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가기도 한다”던 박 직무대행은 “OTT 등을 떠나서 이건 관객들에게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다”면서 ‘전, 란’이 그런 작품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가 빠져 있는 답변에 비슷한 질문이 또다시 나왔다.
박 직무대행은 “재밌었고 소개하고 싶었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많은 상업영화를 봐왔지만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판단했다. 제가 큰 의미를 둔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넷플릭스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거나 후보에 오를 때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그 논란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TV 화면 사이즈라는 것이 문제인 것일까. 사이즈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여전히 관객들이 극장과 영화제를 찾는 건 한 공간에서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감을 공유하는 경험을 가져가는 것과 관련되는데, 그건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신록은 “이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 국가에 공개된다고 들었다. 여러 나라에서 ‘전, 란’을 사랑해 주면 극장에 걸리는 영화도 활력을 얻지 않을까 싶다”면서 “국내와 해외에서도 좋은 평을 받아서 관심을 얻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군도’와 ‘전, 란’ 속 강동원의 차이는?
‘전, 란’은 조선시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으로,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종려와 천영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 친구가 된다. 하지만 집안 노비들의 반란으로 일가족이 죽는 비극을 맞은 종려가 천영을 주동자로 의심하면서 둘 사이가 틀어진다. 영화제는 박찬욱 특유의 유머 코드와 굵직한 갈등과 대결의 국면으로 설계한 이야기가 긴장감을 안긴다고 평가했다.
강동원은 2014년 개봉한 ‘군도’ 이후 오랜만에 사극에서 검을 쓰는 액션을 선보이게 됐다. 그렇지만 ‘군도’에서는 양반 조윤 역이라면, ‘전, 란’에서는 몸종 천영 역이다. 강동원은 “이 역할이 들어왔을 때 해보고 싶었다”면서 “양반 역은 기품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노비 역을 하면서 매우 편하게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강동원과 박정민은 화려한 검술 액션을 뽐냄과 동시에 검술 안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녹여냈다. 강동원은 “천영은 자유분방하게 검을 쓰고, 자신이 상대한 인물들의 검을 흉내 낼 수 있는 탁월한 검사”라면서 “여러 인물들과 싸우는데 그때그때 분노와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정민은 “천영과 헤어지기 전에는 그와 비슷한 검술을 쓰다가 왕을 호위하는 7년의 시간 동안 그 안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뽐낸다. 천영과 다른 느낌의 검술을 구현하고 싶어서 감독님, 액션팀과 상의를 많이 했다”면서 “천영보다 굵고 큰 검을 쓰고, 세로가 아닌 가로로 검을 쓰는 모습을 가져가려고 했다”고 짚었다.
●김상만도, 강동원도 놀란 박찬욱의 집요함
‘전, 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쓰고 그의 제작자인 모호필름이 제작에 나섰다. 김상만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에서 미술감독을 맡으며 오래된 인연을 이어왔다.
김 감독은 박 감독에 대해 “스승 같은 분”이라면서 “제 장점을 봐주고 연출 제안을 해줬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많은 조언을 해줬고, 시나리오 완성 후 각색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도움을 줬다. 현장은 많이 못 나왔는데, 시나리오의 섬세한 대사 한 마디를 정확하게 조언해 주는 걸 보고 놀랐다”며 강동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강동원은 “감독님이 제가 연기한 걸 보고 ‘그건 장음이야’라고 했다. 처음에는 ‘네?’라고 반문했다. 알고 보니 극중 제가 ‘장원급제’를 말하는데, ‘장’이 장음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웃었다.
김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디테일이 충격적일 정도로 높다”면서도 “더 놀라운 건 이후 강동원 씨가 자기 대사 분량에서 장음과 단음을 모두 체크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차승원도 마이크를 들고 “제가 지금 박찬욱 감독님과 영화를 찍고 있다. 내레이션을 하는데 ‘OO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도저히 포인트를 줄 수 없는 그 단어에 포인트를 두라고 말씀하시더라. 심하게 꽂히셨다.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차승원은 박찬욱 감독의 차기 작품인 ‘어쩔수가없다’를 촬영 중이다.
한편 2일 오후 박보영·안재홍이 사회를 보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막을 여는 제29회 부국제는 오는 11일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54편을 포함해 총 63개국으로부터 온 278편의 영화가 영화의 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메가박스 부산극장 등 총 5개 극장, 26개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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