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9년. 1편의 성공 이후 2편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시간이 말해주는 건 전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겠다는, 더 명확히 “성공을 재탕하지 않겠다”는 연출자의 단호한 결심이기도 하다.
13일 영화 ‘베테랑2′(감독 류승완·제작 외유내강)가 관객을 찾아온다. 2015년 개봉해 1341만명을 동원한 ‘베테랑’ 이후 무려 9년 만에 선보이는 속편이다.
‘베테랑’은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와 정의감 넘치는 서도철 형사(황정민)를 내세워 명확한 선과 악의 대결, 악당을 제압하는 카타르시스를 무기로 관객에게 시원한 쾌감을 안기며 성공적인 범죄액션 영화의 최전선에 자리매김했다. 그렇지만 ‘베테랑2’는 전편과 다른 노선을 걸으며 차별화를 이룬다. 이를 상징하는 두 인물인 서도철과 막내 형사 박선우 역으로 합류한 정해인이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쫓으면서 거대한 비밀을 마주한다.
강력범죄수사대는 사법체계를 무시하고 피해자가 당한 방식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연쇄살인범을 조사한다. 형사들에게는 잡아야 하는 범인이지만, 온라인상 분위기는 다르다. 자칭 ‘정의부장’이라는 유튜버(신승환)는 살인마를 ‘해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한편에선 “정의구현이 이뤄졌다”며 살인마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형성된다.
영화는 ‘솜방망이 처벌’ 등 사법체계의 빈틈과 조회수 때문에 사실 검증 없이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 사이버 레커(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일부 유튜버를 지칭하는 용어) 등을 끌어와 연쇄살인범을 영웅시하는 사회에서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1편보다 진지하고 어두우며 서늘한 분위기가 극을 지배한다.
● 똑같으면서도 변한, 황정민의 서도철…’정의’의 편에서
1편에서 서도철은 명확했다.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다’는 철칙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일념으로 집요하게 악당 조태오(유아인)를 물고 늘어졌고, 결국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돌아온 서도철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거칠고 투박하지만, 사건 앞에서는 날카로운 눈매를 장착한다. 1편에서 입은 9년 전 의상을 그대로 착용하고 헤어스타일도 똑같다. 이에 대해 황정민은 “관객들이 ‘벌써 2편 나왔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외면은 그대로지만, 내면은 한층 복잡해졌다. 처음엔 서도철도 농담의 소재로 사용할 정도로 해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다가 해치가 추가 살인을 예고하는 등 사태는 점차 겉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해치의 사적 제재로 인해 죽는 범죄자들을 두고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까지 늘어나자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이 있어? 살인은 살인!”이라고 일갈한다. 해치의 등장은 서도철을 다시 한번 끝까지 악당을 추격하는 베테랑 형사로 나아가게 한다.
2편에서는 아버지 서도철의 모습도 부각된다. 사건 앞에서는 베테랑이지만, 자식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우리네 아버지의 얼굴은 황정민을 만나 현실감을 더한다. 형사로서, 아버지로서의 고민을 통해 서도철의 다층적인 면모를 비춘다.
● 조태오와 다른, 정해인의 박선우…악당의 얼굴로
조태오의 뒤를 이을 빌런 역할은 ‘베테랑2’ 캐스팅 소식과 함께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정해인이 형사 옷을 입은 연쇄살인범으로 역대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큰 변신을 한다. 주로 따스하거나 정의로운 역할을 소화해온 정해인은 본모습을 감춘 박선우를 통해 극의 미묘한 긴장감을 이끈다.
전작의 조태오는 ‘절대 악’이라는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했다. 자신의 든든한 뒷배경만 믿고 악랄한 행동을 저지르면서 무서울 게 없다는 듯 질주했다.
그렇지만 박선우는 다르다. 살인를 저지른다는 점에서 그 역시 악인이지만, 그가 살인하는 대상이 사회가 사실상 내버려둔 악랄한 가해자들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고 질문의 여지를 남긴다. 류승완 감독이 “이 영화는 빌런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며 “그 행위와 행위가 주는 여파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선우의 전사나 동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건 류승완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다. 그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속 시원한 해답보다는 고민해 볼만한 질문거리를 가지고 가길 바랐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베테랑’ 시리즈에서 빌런의 비교가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정해인 또한 “조태오가 발산하는 불같은 성질의 빌런이라면 박선우는 혼란과 혼동, 파란색에 가까운 차가운 느낌의 인물”이라며 조태오의 뒤를 잇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부담은 없었다”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