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내가 죄 짓고 살지 말라 했지”라며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때려잡은 서도철(황정민)을 통해 ‘나쁜 놈은 반드시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 사필귀정의 원칙을 보여준 ‘베테랑’은 1341만 관객의 마음을 훔치며 역대 흥행 8위에 올라 있다.
그 ‘베테랑’이 9년 만에 돌아온다. 13일 개봉하는 ‘베테랑2′(감독 류승완·제작 외유내강)을 통해서다.
1편이 워낙 큰 사랑을 받아선지 ‘베테랑2’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예매율이 70%를 돌파했고, 예매량도 50만장을 넘어설 기세다. 그만큼 ‘베테랑’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단는 뜻일 게다. 2편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개봉을 이틀 앞둔 11일 ‘베테랑2’의 제작사 외유내강의 두 키맨, 강혜정 대표와 조성민 부사장을 만나 들어봤다.
● “2편 안 해?”…황정민 물음에서 시작된 ‘베테랑2’
‘베테랑’은 서도철의 이야기로, ‘베테랑’이 곧 황정민임은 말할 것도 없는 이 영화의 전제이다. 연출자인 류승완 감독조차 “내가 빠져도 황정민은 빠질 수 없다”며 “황정민이 안 한다고 했다면 ‘베테랑’도 종결”이라는 말로 황정민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베테랑2’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도 황정민의 공이 컸다.
“(황)정민 선배가 ‘나이 들면 못 뛴다’면서 ‘2편 안 하냐’고 계속 물었다. 감독님은 ‘언젠가는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먼저 하고 싶어 했던 프로젝트가 밀려 있었다. 정민 선배가 계속 말하니까 ‘아 이 선배 ‘베테랑’에 진심이구나’ 생각했다. ‘모가디슈’ 촬영이 끝나고 ‘밀수’의 프리 프로덕션 때였나… 정민 선배에게 ‘2편을 한다’고 알렸다.”(조성민 부사장, 이하 조)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결과적으로 그 시간이 득이 된 것 같다. 황(정민) 선배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서울의 봄’을 하면서, 감독님은 ‘모가디슈’ ‘밀수’를 하면서 두 사람이 더 단단해졌다. 배우가 흔들리거나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2편을 하기가 힘들지 않나. 흔들리지 않고 잘 버텨줘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강혜정 대표, 이하 강)
‘베테랑2’은 외유내강에서 제작하는 첫 속편이다. ‘베테랑’이 외유내강의 인지도를 높여준 작품이기도 하지만, 첫 프랜차이즈 영화로써 외유내강의 비전과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여러 모로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베테랑2’는 1편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어찌 보면 1편과 별개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실험적이다. 지난 9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베테랑2’는 “1편에 비해 어둡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악의 대상이 복잡하고 다층적이어서다.
‘베테랑’은 조태오를 통해 힘과 돈을 이용해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을 비판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베테랑2’는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힘 있는 자에 관대하고, 힘 없는 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의 허점과 불신, 그로 인해 사적 제재를 횡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파고든다.
● 1편 성공 재탕하지 않고, 2편만의 길을 간다
“감독님은 처음부터 ‘1편의 성공을 재탕하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거기에 동의했다. 제작자로서 자본과 성공(흥행)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지만, 대중과 동료의 평가, 산업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도 있는 거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마음에 드는 것은 ‘성장’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데 인간 서도철의 성장과 함께, 배우 황정민의 성장, 감독 류승완의 성장이 잘 녹아 있다는 거다.”(강)
‘베테랑2’에서 서도철과 강수대 수사들이 쫓는 대상은 ‘해치’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은 민감한 소재인 만큼 실제 사건을 참고하는 것을 피했다. 다만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낸 서너 명의 형사들에게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자문을 얻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일반 시사회 반응을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은 어둡게 안 봤더라. 흥미로웠던 건, 젊은 관객들의 반응인데, 그들은 1편과 비교해서 보지 않는다. ‘베테랑’이 나온지가 10년이 됐다는 걸 그때 실감한 것 같다(웃음). 지금 20대 중에는 1편을 모르는 관객들도 많고, ‘베테랑2’에서 다루는 사건과 사회에 대해서 1편보다 훨씬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남이 나를 정의하고, 자고 일어나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는 사회이지 않나. 요즘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공감할 것 같다.”(조)
● 액션 장인 내공 빛나는 ‘남산 액션’
1편의 명동에 이어서 ‘베테랑2’에서도 한국 대표 명소를 활용한 액션이 나온다. 사람들이 붐비는 남산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서도철과 박선우(정해인), 용의자가 벌이는 격투 신은 볼거리다. ‘정형외과 액션’으로 이름붙일 만큼 액션의 강도와 난도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 장면을 위해 500명의 보조 출연자를 세우고, 촬영에 10일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공들였다.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과 제작진의 내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산이 시나리오에 있기는 했지만, 촬영 전에 직접 가서 둘러보니 통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답이 안 나오더라. 감독님이 ‘재미 있겠다’고 하길래 ‘미쳤나봐’ 그랬는데, 촬영 때 콘티에 떡 하니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 아주 위험한 사람이구만’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강)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모더레이터가 ‘남산 액션을 어떻게 찍은 거냐’고 묻길래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한숨만으로도 다 이해하더라. 영화가 개봉 전이라서 지금은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계단에 일일이 매트 작업을 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촬영했다.”(조)
● 조태오 잇는 박선우 “정해인, 잠재력 큰 배우…”
‘베테랑’의 ‘1000만 흥행’에는, 희대의 악당 조태오를 탄생시킨 유아인의 열연이 한 몫 했다. ‘베테랑2’ 제작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세간의 관심은 누가 유아인에 이어 황정민과 함께 극을 이끌지로 쏠렸다.
정해인이 그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영화 ‘서울의 봄’과 ‘D.P’ 시리즈에서도 곱고 선한 얼굴 뒤에 가린 진중한 면모를 드러냈던 정해인은, ‘베테랑2’에서 더 강렬한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스펙트럼 넓은 배우임을 증명해낸다.
“정해인은 감독님이 ‘시동’에서 눈여겨본 배우였다. 언젠가 자기 영화에서 정해인과 꼭 한번 작업해보기를 원했다. 많은 남자배우들이 액션영화를 꿈꾸지만, 액션은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액션을 구현할 수 있는 몸이 있어야 한다. 정해인은 그런 몸을 가진 배우였고, 배우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텐데 그게 우리와 잘 맞았던 것 같다.”(강)
“외유내강은 신세를 지면 꼭 갚는 회사다.(웃음) 정해인의 이름이 나왔을 때 만장일치로 다 ‘좋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정해인은 갑자기 스타가 된 배우가 아니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작품을 쌓으며 버텨서 여기까지 온 준비된 배우다. 그런 배우만이 스크린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한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에서 정해인을 보고 싶다.”(조)
● 두 키맨이 진단하는 한국영화의 위기
한국 영화산업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붕괴 위기를 경험한 뒤 여전히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유내강은 그런 위태로운 시장을 떠받쳐온 제작사 중 한 곳이다. 개봉 위험 부담에 모두가 피하는 상황에서도 20121년 대규모 해외 로케로 완성한 ‘모가디슈’와 황정민이 주연한 ‘인질’을 비롯해 지난해 ‘밀수’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놨다.
‘1000만 흥행’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고 하나 올해 여름시장도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영화 개봉 및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등 문제들이 하나 둘 씩 곪아 터지며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최전선에서 이를 몸소 겪은 외유내강이기에 지금의 문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강 대표는 특히 걸출한 신인의 부재를 꼽았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차세대(감독)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콘텐츠 교육 환경이 좋아지면서 실력은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전반적으로 좋아졌는데, 문제는 압도적으로 잘하는 한국영화를 이끌고갈 차세대 리더 그룹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시니어가 된 지 한참이 됐다. 시니어인 우리가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뭔가를 보여주는 다음 세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강)
“10년 전만 해도 유럽에 가면 ‘아리가또’ 했는데 지금은 ‘감사합니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다른 데와 비교하면 사실은 규모가 작은 산업이다. 영화를 규모의 경제로 바꿔놔서 자본은 많이 들어왔는데 잘 만드는 아티스트가 부족해서 퀄리티가 떨어지고 그 결과로 자본이 회수되지 않으면서 지금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다. 투배사들 없이는 우리(제작사)도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잘 만드는 아티스트도 계속해서 나와야 하고, 미래의 가치를 생각해서 영화를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회사와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문화산업으로 접근해주면 좋을 것 같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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