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이 최근 후보작들을 발표한 가운데, 과거와 현재 한국을 둘러싼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끈다.
이태원 참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부터 살인사건 누명을 쓴 한인 청년이 겪은 부당한 인종 차별의 고발, 탈북민 가족의 처절한 탈출 여정을 담은 3편의 작품이 에미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한국 제작진이 만든 작품들이 아닌, 미국 등 해외 연출자와 제작진의 시선으로 한국 및 남북한을 둘러싼 이슈를 다뤘다는 사실에서 주목받고 있다.
과연 이들 작품이 시상식에서 수상의 낭보를 울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 뉴스·다큐멘터리 부문 후보…’크러쉬’·’프리 철수 리’
에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NATAS)가 지난 25일 제45회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 후보를 발표했다. 에미상은 본상 격인 프라임타임 에미상과 함께 데이타임 에미상,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 스포츠 에미상 등으로 나뉜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크러쉬'(Crush)는 오는 9월27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팔라디움 타임스퀘어에서 열리는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에서 ‘뛰어난 탐사 다큐멘터리'(Outstanding Investigative Documentary) 부문 후보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크러쉬’는 미국 경찰의 성폭력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저질러진 부정을 고발한 넷플릭스의 ‘희생자/용의자'(Victim/Suspect), HBO의 ‘구원자 강박증'(Savior Complex) 등 4편과 경쟁한다.
지난 2022년 10월29일 한국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참사를 다룬 ‘크러쉬’는 지난해 10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파라마운트+를 통해 2부작으로 공개됐다.
‘크러쉬’는 내레이션 없이 이태원 참사 당일의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긴박한 영상, 생존자와 목격자, 구조대원의 인터뷰, 경찰에 접수된 신고 녹취, 이후 이뤄진 청문회와 기자회견 등 280개 출처에서 확보한 1500시간 분량의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2017년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11분'(2022년)을 연출한 제프 짐발리스트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다만 ‘크러쉬’는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어 궁금증을 증폭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파라마운드+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닌, 제작사가 플랫폼에 제공하는 수급 콘텐츠의 한계 때문이다.
‘크러쉬’의 제작사는 파라마운트+를 통한 미국 공개 외에 다른 국가와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현재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이번 에미상 후보 진출로 인해 작품을 향한 국내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내서 지난해 10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감독 하줄리, 이성민·제작 이철수다큐멘터리 유한책임회사)는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 후보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Best Documentary) ‘뛰어난 역사적 다큐멘터리'(Outstanding Historical Documentary) ‘뛰어난 홍보 공지'(Outstanding Promotional Announcement) 등 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뛰어난 홍보 공지’에서는 ‘프리 철수 리’의 티저 영상이 후보에 올랐다.
‘프리 철수 리’는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총격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던 21살의 한인 이민자 이철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미국 경찰의 지목으로 억울한 살인 용의자가 돼 수감된 청년 이철수는 경찰과 사법부가 자행한 인종차별에 맞서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철수 구명 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영화는 살인 누명을 썼다가 실제 살인자가 된 이철수의 이야기를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에서 만연했던 아시안계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쪽에서 인종차별에 맞선 이들에 주목한다.
코레암 저널의 편집장 출신인 하줄리 감독과 뉴욕타임스 등의 영상을 제작했던 이성민 감독은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방대한 사건과 재판, 캠페인 기록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이철수라는 인물의 충격적인 삶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도 놓치지 않으며 남다른 깊이의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연출을 맡은 감독들은 미국 이민자인 2세 아시안이다.
● 수미 테리 제작 ‘비욘드 유토피아’…프라임타임 에미상 후보
북한을 탈출하는 이들의 위험한 여정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개빈)도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오는 9월16일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리는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후보다.
특히 이 작품의 제작을 맡은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최근 최근 미국 검찰에 한국 정부를 대리해 불법적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상태. 한·미 양국의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오른 그가 다른 3명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에미상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낙원이라고 믿고 자란 땅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여정과 이들을 돕는 김성은 목사의 헌신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탈북 인권 다큐멘터리다.
지난 1월 국내서 개봉해 북한 주민의 목숨을 건 험난한 탈북 여정을 생생하게 담은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다. 동시에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에서 이뤄지는 인권의 실태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기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들은 현재 북한의 인권 실태를 짐작하게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해 1월 제3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관객상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나라에서 상영돼 호평이 이어졌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예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