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데 강한 ‘K히어로’의 시대…’무빙’부터 ‘힘쎈여자’까지
우리 주변에서 볼법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K히어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멋진 슈트도, 세상과 인류를 구하겠다는 엄청난 대의도 없다. 이들은 소중한 나의 가족과 이웃, 주변을 먼저 살핀다.
또한 각성한 힘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을 체포하고,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고, 학교 폭력을 일삼는 학생에게 ‘참교육’을 선사하기도 한다. 현실에 기반을 둔, 생활밀착형 K히어로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 친근하고 인간적…’한국형 히어로’가 다른 이유
지난 7일 첫 방송한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극본 백미경·연출 김정식)에는 선천적으로 어마어마한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 히어로가 등장한다.
할머니 길중간(김해숙)은 마장동 정육업계의 큰손으로 평생 소고기, 돼지고기를 만져 돈을 벌었다. 조폭들에 맞서 마장동 상인들을 지킨 그는 ‘천하무적 정육여인’으로 불린다. 은퇴하고 람보르기니 오픈카를 끌고 다니는 길중간은 남다른 유머감각과 사랑을 향한 뜨거운 DNA가 넘치는 인물로, 유쾌하고 친근하다.
길중간의 딸이자 강남의 최고 현금부자 황금주(김정은)는 어릴 때 몽골에서 잃어버린 딸 강남순(이유미)을 찾으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줘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행동의 바탕에는 가족애가 서려있다.
1회 4.3%(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한 ‘힘쎈여자 강남순’은 4회 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은 9.8%를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힘 세고 돈도 많지만, 우리네 주변을 챙기는 3대 모녀의 매력이 시청자와도 통했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극본 강풀·연출 박인제)에는 하늘을 날고, 초인적인 오감 능력을 지니고, 신체가 다쳐도 회복되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비범한 능력을 숨기고 치킨집과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간다. 이유는 하나다. 능력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이용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 이재만(김성균) 등 부모들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장희수(고윤정) 김봉석(이정하) 이강훈(김도훈) 등 자식들은 부모를 지키기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 초능력자는 세상이 아닌, 소중한 나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싸운다.
최근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힙하게’에서도 친근한 히어로가 등장했다.
한지민이 연기한 봉예분은 다른 사람의 엉덩이를 만지면 그의 과거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수의사다. 한지민은 1% 부족하지만, 정 많고 오지랖 넓은 우리 동네 ‘허당’ 히어로인 봉예분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힙하게’는 9.3%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5일 개봉한 영화 ‘용감한 시민'(감독 박진표·제작 스튜디오N)에도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악인을 처단하는 히어로를 볼 수 있다.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정교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시민(신혜선)이 그 주인공이다. 특별한 초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소시민은 태권도, 합기도 등 갈고닦은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정의 구현에 나서는 ‘우리 학교 히어로’다.
● ‘악’을 직접 처단하며 카타르시스 안겨
K히어로들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통해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각종 사건을 직접 해결한다.
극 초반 강남순, 황금주 모녀의 재회에 초점을 맞췄던 ‘힘쎈여자 강남순’은 현재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29일 방송에서는 강남순과 강남한강지구대 경위 강희식(옹성우)이 공조해 신종마약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악의 축’ 류시오(변우석)의 본거지로 잠입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무엇보다 최근 연예계가 때아닌 마약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힘쎈여자 강남순’이 마약과의 전쟁을 그리며 리얼리티를 더하고 호기심도 자극한다. 드라마가 드라마로만 끝나지도 않는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며 실제 마약 범죄 예방을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힙하게’에서는 봉예분과 문장열(이민기)이 자잘한 생활밀착형 범죄를 공조 수사하던 중,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까지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용감한 시민’에서 소시민은 뒷배경을 무기 삼아 잔혹한 학교 폭력을 자행하고, 교권을 침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한수강(이준영)을 직접 처단한다.
이 같은 K히어로는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히어로의 등장과 인기에 대해 “한국 콘텐츠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데, 우주나 세계를 구한다는 히어로에 대한 몰입감은 별로 없다”며 “이전 한국형 히어로들은 대부분 장르물에 등장해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사적 복수를 통해 억울한 서민들을 도와줬다. 이제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이같이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K히어로의 특징 중 하나로 ‘가족애’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는 “가족 서사는 한국 드라마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주제”라며 “판타지물은 자칫 잘못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가족 서사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끌고 온다면 땅에 발을 딛게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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