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아! 정숙아! 복순아! 영자야! 그리고, 남순아!’
‘길복순, 우영우, 차정숙, 도봉순 그리고 강남순.’
최근 1~2년 사이 시청자의 시선을 모은 영화와 드라마 속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닥터 차정숙’ ‘힘쎈여자 도봉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연기력을 통해 극중 인물과 실제 연기자의 모습이 어우러진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최근 극중 여성 캐릭터들의 이름을 제목에 내건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액션과 사회성 짙은 드라마 등 장르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다.
현재 화제 속에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백미경 작가가 대본을 쓰며 여성 주인공 캐릭터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힘쎈여자’로서 사회악에 맞서며 벌이는 이야기가 시청자 공감을 얻으며 한창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에 앞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닥터 차정숙’, 영화 ‘길복순’ 등도 기존 남성적 시각에서 그려진 다양한 설정에서 나아가 여성 캐릭터로서 이름을 각인시켰다.
업계에서는 2015년 김선아가 주연한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부터 시작된 시도가 최근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본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당시 30대로 다소 뚱뚱한 외모를 지닌 주인공 김삼순이 전문 파티시에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을 그렸다. 드라마는 김선아가 지닌 털털하고 친근감 짙은 이미지와 김삼순이라는 극중 캐릭터가 제대로 어우러지며 시청자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캐릭터의 이름은 각 인물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기본적인 장치이다”면서 “이전에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방식은 단순한 역할 위주이거나 아예 이름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여성 캐릭터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작품이 크게 늘어난 것은 현실 속 여성들이 지닌 욕구에 부합하는 중요한 방식이 됐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체성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현재 여성들의 욕망과 맞물려 보편성을 확장해가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며 개별적 존재로서 자아를 향한 욕망을 캐릭터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여주인공 캐릭터들의 이름은 대체로 왜 ‘올드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윤 교수는 “기존 멜로나 로맨스 장르에서는 극중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와 맺는 관계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만 봤다”면서 “그래서 캐릭터의 이름이 여성스런 이미지를 주었고, 이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이나 남성 캐릭터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로 여긴 탓”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이전의 캐릭터 묘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이름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바라보는 시청자와 관객의 시선에서도 그처럼 주변에서 흔한 ‘친근한 이미지’의 이름을 통해 “이야기를 편안히 거리를 두지 않고 볼 수 있게 된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ENA의 연애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 출연하는 이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윤 교수는 실제 본명과는 상관없이 ‘영숙’ ‘정숙’ ‘순자’ ‘영자’ ‘옥순’ 등으로 출연자에게 별도의 이름을 주는 것도 “친근감과 함께 각 인물에 개별성을 부여하면서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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