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가 택선(배두나)은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소개팅남 수필(손석구)을 만난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 나타난 수필은 실험용 쥐 얘기만 늘어놓는다. 센스도, 예의도, 정신도 없다. 그날 밤 택선의 집으로 장미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찾아온 수필. 낮과는 달리 상기된 표정인 수필은 뜬금없이 결혼하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수필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고, 택선은 그가 남긴 어묵꼬치를 우적우적 씹어댄다.
택선의 세상은 다음날, 완전히 달라진다. 허허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 평소 눈길도 주지 않던 꽃무늬 원피스도 차려입는다. 자동차 딜러인 동창 연우(장기하)의 영업용 문자에 마음이 요동치기도 한다. 모든 것의 원흉, 어묵을 먹다 혀를 씹히는 바람에 감염균을 몰고 온 ‘톡소 바이러스’ 탓이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게 강렬한 호감을 느끼게 한다. 택선은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균(김윤석) 박사와 여정을 떠난다.
오는 5월7일 개봉하는 영화 ‘바이러스’는 가슴 시리도록 아프다가도 또 다시 주책없이 빠져드는 ‘사랑’이란 증상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이지민 작가의 원작소설 ‘청춘극한기’ 속 러브 바이러스를 연출자 강이관 감독이 톡소 바이러스로 변주했다.
바이러스는 어쩌면, 꼭 숨겨두었던, 또는 잠들어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인물들의 색채는 우중충한 잿빛이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타인의 글을 풀이하면서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은 번역가 택선, 약물 개발에 희생된 쥐들을 기리는 연구원 수필, 기계적인 말투의 자동차 딜러 연우, 동생의 죽음으로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하다 실패한 이균이 그렇다.
이들을 한 궤로 엮어주는 톡소 바이러스는 각기 숨겨온 진심을 꺼내놓는 계기가 된다. 실제 감염자는 수필과 택선이지만, 연우와 이균 역시 그 범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이러스는 기어이 이들의 단단하게 굳어져버린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버린다. 그래서 이들에게 바이러스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개인적 ‘재난’이기도 하다. 결코 예상치 못했던 변화였으므로.
영화는 여기에 수필이 근무하는 연구소 인근 노인들의 변화하는 모습도 들여다본다. 어쩌면 바이러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내면에 숨어있던 욕망을 부추긴 게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생명의 진화하는 역사 속에서 발견한 바이러스와 사랑의 현상을 실험용 비커 속에 뒤섞는다. 그리고는 국가 통제 시스템의 부재를 드러내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을 등장시킨다. 이쯤 되면 마치 ‘어른들을 위한 재난 동화’처럼 비칠 만하다.
대체로 재난영화가 다수의 생존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한지 묻는다면, 영화 ‘바이러스’는 더 내밀한 차원으로 파고든다. 무엇보다 가족이 아닌 완전한 타인들이 오로지 바이러스 감염자 택선을 살리기 위한 나선다는 점에서 차별화의 지점을 설정한다.
독특한 소재와 설정이라는 점에서 통통 튀는 분위기를 유지했다면 좋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움을 남긴다. 또 사랑과 닮은 바이러스가 다양한 이들에게 다가간다면 어떤 형태가 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면 더 확장된 이야기로서 힘을 얻었을 듯하다.
그래서 영화는 신선하게 우스꽝스럽고도 어딘가 어설픈 소동극으로 흐른다.

감독 : 강이관 / 출연 : 배두나,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 / 제작 : 더램프 / 배급 : 바이포엠스튜디오 / 원작 :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 / 장르 : 드라마, 재난, 코미디 / 개봉일: 5월7일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98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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