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작에 키우길 잘 했지. 우리 효자 가자! 누렁이 어딨니~.” 관식이 엄마 계옥은 어촌계장이 된 아내를 축하하는 잔칫날 앞치마를 두르고 파전을 나르던 아들(박해준)을 보고 혀를 차더니, 평상 아래 있던 작은 강아지 누렁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팔불출 아들이 못마땅해 키우는 개 누렁이를 아들보다 나은 효자로 여기는 엄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연출 김원석)의 한 장면이다.
애순에게 아들 관식을 빼앗긴 계옥은 ‘폭싹 속았수다’에서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여느 엄마들과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그 역시 젊은 시절 남편과 뜨겁게 사랑해 야반도주로 관식을 임신한 처지이지만, 사랑에 눈이 먼 관식과 애순은 영 마땅찮아 한다. 모진 시집살이로 애순을 타박하지만 번번이 자식을 이기지 못해 속을 태우는,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아들 엄마’로 드라마를 관통하는 모성애의 한 축을 담당한다.
배우 오민애가 관식 엄마 계옥을 연기하고 있다. 배우 염혜란이 그린 애순 엄마 광례의 대척점에서 전혀 다른 성향을 나타내지만, 내 자식을 끔찍하게 여기는 뜨거운 모성애를 품은 엄마라는 점에서는 같다. 염혜란이 1회에서 애끓는 모성애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했다면, 오민애는 매회 꾸준히 비중 있게 등장하면서 애순과 관식의 인생에 긍정과 부정의 영향을 주고받는다. 살갑지 않지만 자식은 지켜주는 표현에 서툰 엄마의 또 다른 얼굴이다.
60여년의 시간을 다루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들 관식의 젊은 시절은 배우 박보검, 중년 이후의 시기는 배우 박해준이 연기하고 있지만 오민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식의 엄마로 출연한다. 박보검의 엄마일 땐 아들과 며느리를 어떻게든 떼어놓으려 당근과 채찍을 벌갈아 주지만, 시간이 흘러 박해준의 엄마일 땐 포기한 듯 아들보다 말 잘 듣는 누렁이를 더 소중히 여기는 모습으로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니 ‘아들 엄마’일 때마다 오민애의 활약은 더욱 빛이 난다. 지난해 여름 극장가 흥행작인 ‘파일럿’에서는 위장 취업을 위해 여장을 불사했던 조정석의 엄마로,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아들 앞길 막는 며느리와 그 무리를 혼내는 하도영(정성일)의 엄마였다.
오민애는 1999년 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데뷔해 경력 30여년에 다다른 배우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대부분 짧게 등장하는 단역에 머물렀고, 때문에 스스로 “30여년간 무명의 세월을 겪었다”고도 말한다.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부터다. 이후 ‘더 글로리’에서 그 유명한 ‘연진이’를 며느리로 둔 하도영 엄마를 소화하면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아들을 위해 연진과 그 옆에 있는 재준이를 동시에 짓누르는 카리스마로 시청자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바로 그 배우다. 차곡 차곡 쌓은 연기의 저력은 매 작품마다 숨길 수 없는 실력으로 터져 나온다.

유독 ‘아들 엄마’일 때 더 주목받는 오민애는 자식 뒷바라지보다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한 ‘맺고 끝냄’이 분명한 요즘 엄마의 모습으로 지지를 얻는다. ‘파일럿’에서도 아들이 직장에서 잘리고 이혼까지 해 사면초가에 놓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가수 이찬원만 좇았다. 아들보다 이찬원이 좋다고 외치는, 진정한 ‘찬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들 다 키웠으니 이제 내 삶을 살겠다는 엄마의 선언이 관객에 신선하게 다가갔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마찬가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부산으로 야반도주를 하자, 걱정하는 대신 당장 부산으로 찾아가 아들과 애순이를 데려오고, 나름의 전략으로 이들을 떼어놓는 데도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저력의 배우는 그냥 둘 수 없다는 듯 오민애는 최근 스크린에서도 활약을 잇는다. ‘파일럿’과 함께 지난해 또 다른 주연영화 ‘딸에 대하여’로도 관객과 만났다. 딸과 그의 동성 연인과 함께 살게 된 요양보호사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동성 커플인 딸과 연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담은 영화에서 오민애는 세상의 시선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랑과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실제로 시부모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오민애는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녹여 내면서 관객이 작품을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했다.
지난해 8월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오민애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마다 관객이 다르게 봐 줄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며 “아직 낯익은 얼굴이 아니라서 모를 것 같지만 지금보다 더 대중적인 배우가 되면 분명 ‘이 인물이 저 배우였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바람을 가지고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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