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소원은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언젠가 찾아올 왕자님을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공주는 없었다. 2025년의 공주는 여왕의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 소원을 이루고 싶은 외침을 노래한다. 영화 ‘백설공주’가 따뜻하고 선한 마음과 운명에 맞서는 담대한 용기로 작품을 둘러싼 논쟁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개봉 전부터 논쟁의 중심에 있는 ‘백설공주’가 19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난다. 1812년 그림형제 동화에서 출발한 백설공주는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수많은 공주 캐릭터에 영감을 준 디즈니의 첫 프린세스이자 세계 최초 풀 컬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라이브 액션 영화로 새롭게 탄생했다.
백설공주는 마법 거울이 인정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이다. 새엄마이자 사악한 마녀의 질투로 독사과를 먹고 쓰러지지만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나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원형을 이룬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시도하는 실사 영화 프로젝트로 결정된 뒤부터 기대를 모았지만 돌연 캐스팅 단계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원제인 ‘스노우 화이트'(Snow White)가 드러내듯, 하얀 피부를 가진 원작 캐릭터의 주요 설정을 깨고 백설공주 역에 라틴계 배우 레이철 제글러를 캐스팅하면서 팬들의 반감이 형성됐다. 선입견을 깨고 ‘디즈니 프린세스’의 세계관을 넓히려는 의도로 읽히나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양하는 디즈니의 전략에 반감을 드러내는 반응이 집중됐다. 원작을 존중하지 않는 듯 “역할을 위해 나의 피부를 표백하지 않겠다”고 말한 레이철 제글러의 발언도 구설을 만들었다.
● 내면의 아름다움 강조했지만…형식적인 메시지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밤에 태어난 백설공주는 평화로운 왕국에서 ‘담대하고 공정하고 용감하며 진실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다. 하지만 사악한 힘을 가진 여왕(갤 가돗)이 왕국을 지배하면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억압받는다.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여왕은 마법의 거울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백설공주를 지목하자 그를 없앨 계획을 세운다. 마법의 숲으로 도망친 백설공주는 그곳에서 오두막에 사는 일곱 광부들과 도적단의 리더 조나단(앤드류 버냅)의 도움을 받아 여왕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려고 한다.
‘백설공주’는 왕비에 의해 끌려다녔던 공주가 어린 시절 꿈꿨던 담대하고 공정하며 용감하고 진실한 인물로 되어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왕비가 빼앗은 희망을 찾는 강력한 힘은 바로 친절과 사랑, 공감이다. 왕비를 지키는 군대가 됐던 백성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봐 준 공주의 포용력에 감응한다. ‘백설공주’는 이 과정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백설공주가 평소 과소평가되거나 지나치기 쉬운 가치들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교과서적이고 형식적인 교훈과 메시지에 머물머 그 이상의 울림을 일으키지 않는다.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현재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백설공주’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디즈니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는 이미 ‘알라딘’과 ‘뮬란’ 등 디즈니 실사 영화에서 꾸준히 제시한 모델이라 크게 새롭거나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동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백설공주’를 상징하는 장면은 여왕이 거울에게 묻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번 영화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선한 의지’의 의미를 강조하는 가운데 원작과 마찬가지로 여왕은 거울에 같은 질문을 거울에 한다. 거울은 마음속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를 비추지만, 영화의 주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야 할 장면은 오히려 모호한 인상이다.
영화는 원작과 다른 듯 닮았다. 원작의 백설공주가 눈처럼 하얀 피부 때문에 이름을 얻었다면 영화에서는 하얀 눈보라가 치던 밤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백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왕이 백설공주를 질투하는 상황은 같지만, 일곱 난쟁이와 오두막에서 왕자가 올 날을 기다리는 대신 악한 여왕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맞서는 내용은 다르다. ‘백설공주’의 시그니처인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 앞에 백마 탄 왕자님도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는 몇몇 새로운 설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지만 고전의 요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다.
공주와 계모의 관계, 마법 거울과 독사과, 사냥꾼과 일곱 난쟁이 등 ‘백설공주’는 매력적인 설정으로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재해석됐다. 여왕을 푼수끼 넘치는 귀여운 악당으로 묘사한 릴리 콜린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백설공주'(2012년)와 판타지 장르를 입혀 여전사로 거듭나는 백설공주의 모습을 그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년) 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김지미 주연의 전통 사극으로 ‘백설공주'(1964년)라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 레이철 제글러의 노래, 놀라움의 연속
우려를 모았던 레이철 제글러는 영화 공개 후 ‘반전의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부터 지독한 이슈와 함께 해온 그는 우려를 딛고 ‘백설공주’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오디션에서 빼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며 경쟁자 3만여명을 물리치고 주인공으로 선발된 실력답게 이번에도 깊고 풍부한 감정으로 백설공주의 두려움 가득한 내면부터 사랑과 성장을 연기한다. 타인을 생각하는 친절함을 지닌 백설공주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담은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웨이팅 온 어 위시'(Waiting On A Wish)와 일곱 광부들과 함께 집안일을 하며 화합하는 부르는 ‘휘슬 와일 유 워크'(Whistle While You Work) 등 레이철 제글러의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영화를 압도한다. 이에 맞선 갤 가돗은 화려한 치장으로 외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여왕의 광기를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올 이즈 페어'(All Is Fair)를 통해 갤 가돗은 여왕의 삐뚤어진 성격과 욕망을 마음껏 표출한다. 영화 ‘위대한 쇼맨’과 ‘알라딘’ 등 뮤지컬 장르에 특화됐다고 평가받는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백설공주’만을 위한 곡을 새로 만들었다.
PS. 쿠키영상은 없다.

감독 : 마크 웹 / 각본 : 에린 크레시다 윌슨, 그레타 거윅 / 출연 : 레이첼 지글러, 갤 가돗, 앤드류 버냅 외 / 수입·배급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개봉일: 3월19일 /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109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