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한국시간)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숀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에 대한 관심이 치솟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그리고 마이키 매디슨의 여우주연상까지 5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효과다. 이전까지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 가운데 흥행 성적 면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아노라’는 ‘역사상 가장 흥행 성적이 저조한 작품상 수상작’으로도 꼽히고 있다.
북미 지역과 전 세계 영화 흥행을 집계하는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시상식 다음 날인 4일에 ‘아노라’는 13만850만달러(1억8871만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날 올린 5만3627만달러(7733만원)에서 일약 144% 상승한 수치다. 5일에도 ‘아노라’는 21만8519만달러(3억1514만원)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전날 대비 67% 상승했다. 박스오피스 순위는 3일 24위에서 4일과 5일 각각 8위와 6위로 상승해 이틀 연속 10위권에 안착했다. 오스카 수상 직전까지 ‘아노라’의 박스오피스 최고 성적은 7위였다는 점에서 작품상 효과가 눈에 띈다. 미국 독립영화 규모인 600만달러(87억원)로 제작된 ‘아노라’는 현재까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4161만달러(60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국 관객도 ‘아노라’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오스카 직전인 지난 2일, 극장에서 228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33위였던 ‘아노라’는 작품상을 수상한 3일에 430명으로 관객이 늘었다. 박스오피스 순위도 10계단 상승한 23위를 기록했다. 4일에는 467명을 모아 17위까지 올라섰다. 누적 관객 수는 5만6446명이다. 지난해 11월 개봉했지만 오스카 효과에 힘입어 다시 스크린을 찾아 관람을 이어가는 관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주목받고 있는 배급사 네온의 전략
‘아노라’가 지난해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오스카 작품상까지 석권하면서 이 작품을 배급한 네온(Neon)의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오스카 수상은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가려지는 만큼 시상식을 앞두고 각 영화사들은 자사 작품을 각인시키고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영화단체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개최하거나 파티를 주관하는 등 영화 알리기에 앞장선다. 이를 ‘오스카 레이스’라고 부른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영화 홍보에 열을 올리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아노라’는 아이디어를 발휘한 ‘타깃 마케팅’에 주력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6일 “다른 스튜디오들이 특별 시사회나 화려한 광고 같은 전통적인 방법에 막대한 비용을 쏟는 동안 네온은 지난해 11월 LA의 한 자동차 정비소 앞에서 깜짝 굿즈 팝업스토어를 열고 브랜드 티셔츠와 속옷 등을 판매했다”며 영화를 알리기 위한 네온만의 독특한 홍보 방식을 짚었다. 또한 북미에서 열린 ‘아노라’의 첫 상영회에 “오스카 투표자 대신 성 노동자들로 객석을 채웠다”고도 했다. ‘아노라’는 성 노동자로 일하는 아노라(마이키 매디슨)의 결혼 소동극을 통해 그가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과 애환을 그린 작품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달랐다.
톰 퀸 네온 CEO는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면서 “캠페인에 맞춰 영화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 감독, 그리고 관객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네온의 철학”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에도 불구하고 네온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2017년 설립된 네온은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아노라’로 두 번째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버라이어티는 “디즈니 같은 전통적인 스튜디오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도 오스카 작품상을 차지한 적은 없다”면서 “직원 수 60명에 불과한 네온은 5년 만에 두 번이나 이 업적을 달성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인디영화 배급사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버라이어티는 영화 금융 전문가 마크 사이먼의 말을 인용해 “네온은 신중하고 영리한 전략으로 정상에 올랐다”며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것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아노라’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얻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다. 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가 철부지 러시아 재벌2세 이반(마크 아이델스테인)과의 충동적인 사랑을 믿고 허황된 신분 상승을 꿈꾸며 결혼식을 올리지만 이반 가족의 명령에 따라 둘을 이혼시키려는 하수인 3인방에 맞서 결혼을 지켜내려는 소동극이다. 주로 아동, 미혼모, 이민자, 성 노동자 등 주류에서 떨어진 소외 계층의 세계를 집중해서 파고든 숀 베이커 감독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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