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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공동체나 무리를 일컫는 그룹은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기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테두리가 되기도 한다. 10대 학창 시절의 전부를 장악하고 단단한 지반이 되어주는 학교는 집단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10부작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스터디그룹’은 학교에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풀어헤쳐 과장하고 극대화한다. 사소한 일을 거대하게 부풀려 단번에 피부로 와닿게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성적을 높이려는 스터디(Study)가 아니라, 인생의 이치나 방향성을 몸소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을 족집게 과외처럼 빠른 진도로 그린다.
그 시작에는 유성공업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윤가민(황민현)이 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이 책상에 엎드린 틈에서, 윤가민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선생님의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필기하며 집중한다. 농담 하나까지 고스란히 필기하고, 수학 공식도 한글 발음으로 표기하는 엉뚱함이 있다. ‘요령이 없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형형색색의 필기구와 참고서를 가지런히 쌓아둔 모습은 똘똘한 전교 1등 같은 인상이다.
반전은 윤가민의 석차가 전교 꼴찌에 가까운 280등 중 279등이라는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과외 가릴 것 없이 착실히 공부에 매진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윤가민의 성적은 꾸준히 그를 배신했다. 노력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현실이 윤가민에게 적용됐다. 그럼에도 윤가민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을 거두지 않는다.
간신히 찾은 방법이 ‘꼴통학교’로 불리는 유성공고에 입학해 특성화고 전형을 노려보는 일이었지만, 꿈과 달리 윤가민은 언제나처럼 낮은 등수에 머문다. 결국 그는 ‘난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이소룡의 명언을 책상에 붙이고 마지막 도전장을 꺼낸다. 바로 함께 공부할 스터디그룹 팀원들을 모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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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안, 겹겹이 쌓인 권력층과 서열
공부가 아닌 피 터지는 싸움으로 등수를 매기는 유성공고에서 윤가민이 스터디그룹을 만들려는 시도는 사실 성립하지 않는다. 조직 연백파의 리더 피연백(이종혁)의 아들 유성공고 2학년 피한울(차우민)은 아이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전교에 배포한 서열을 나누는 앱을 통해 학교 내 위계질서를 망가뜨린다.
이곳에서 피한울은 엄연한 법이자 현실이다. 아이들은 타인보다 나의 생존을 바라면서 연필 대신 주먹을 날린다. 먹이사슬처럼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에 젖은 교사들은 버젓이 운동장에 담배꽁초를 모으는 드럼통을 보고도 모른척 한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두려움의 정서는 이미 학교의 기능을 상실하게 했다.
그 틈에서 중학생이었던 윤가민의 과외 선생님이자, 계약직 기간제 교사로 유성공고에 발령 받은 이한경(한지은)은 폭력의 근원을 뿌리채 제거하려고 몸부림친다. 이한경은 임용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음에도 등록하지 않고, 기간제 교사로 온 유성공고의 한복판에서 맨몸으로 전쟁을 선포한다. 이 학교를 바꾸겠노라고. 자신의 스승이었던 오정화 선생이 유성공고에 재직하다가,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사망한 뒤에 이한경은 그녀가 머물던 공간으로 들어왔다. 거친 포부와 다르게 이한경은 “혼자 애쓰지 마라”는 기운이 푹 빠지는 소리만을 들어야 한다.
‘스터디그룹’은 손을 놓아버린 무력한 어른들의 방관으로 학교 안에 생긴 거대한 성벽을 뚫고 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한경을 제외하고, 교감부터 학생 부장 선생까지 줄곧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일관된 태도를 지닌 상황에서 썩은 뿌리를 도려내려면 히어로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싸움 천재 윤가민이 그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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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령 피우지 않는, 우직한 싸움 천재 주인공
2019년부터 연재 중인 동명의 네이버 웹툰(글 신형욱·그림 유승연)이 원작인 ‘스터디그룹’은 만화적으로 극대화한 설정으로 통쾌한 풍자를 꾀한다. 강한 몸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삼촌에게 운동을 배우기 시작한 윤가민의 진짜 모습은 ‘재야의 무림 고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는 이소룡 어쩌면 어벤져스의 헐크마냥 엄청난 힘과 기술을 겸비한 실력자다.
드라마의 유쾌한 전개는 서열 앱에 순위조차 기록되지 않은 윤가민이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숨겨왔던 싸움 실력을 드러내면서부터다. 윤가민은 스터디그룹에 데려오려고 눈여겨본 김세현(이종현)을 설득하지만, 유성공고의 학생들이 보기에 그런 행동은 어딘가 거슬린다.
사건의 발단은 간신히 마음을 연 김세현이 윤가민에게 준 수학 오답노트를 이현우(박윤호)가 불태우면서 시작된다. 사과하라는 반복적인 경고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현우에게 무차별적인 반격을 가한다.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주먹을 어렵지 않게 피하는 반사 신경과 상대의 팔다리를 꺾어 신체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장악력, 주먹 한 방으로 건물의 벽이 금이 가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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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다른 능력을 지닌 인물만 없을 뿐이지, 드라마에서처럼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인기를 얻은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와 거울처럼 닮은 연결 고리는 ‘스터디그룹’이 설계한 세계는 판타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공식에 그대로 대입해도 문제될 것 없는 세계관을 다루면서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대단한 승리가 아니어도 된다. 패배감을 위로해 주는 건, 100점짜리 시험지가 아니라 동그라미 하나면 충분하니까”라는 윤가민의 대사처럼, 단순하지만 명확한 가치는 연쇄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룹 뉴이스트와 워너원 출신의 배우 황민현은 흔한 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단어가 걸맞은 느낌의 윤가민을 이질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자칫 어색하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 위에 황민현 특유의 온화하고 순수한 느낌이 자연스레 묻어나면서 인간적인 천재로 느껴진다. 사방에서 돌덩이가 날아와도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본래 목표지점을 바라보며 뚝심 있게 향할 것 같은 ‘미련 곰탱이’이자, 칭찬 한 마디에도 헤실 거리고, 어머니가 정한 10시 통금을 꼭 지키는 윤가민이 불의에 맞서 주먹을 날리는 행동은 그래서 더 효과적인 반전 요소로 작용한다.
황민현의 액션 시퀀스도 ‘스터디그룹’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키가 181cm인 황민현은 긴 팔다리를 이용해 막힘없는 액션을 선보인다. 쌍절곤 형태의 무기를 급조해 이한경의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1대 다수로 맞서고, 협소한 선도부실 안에서 USB를 챙기는 과정에서 보인 낮은 보폭의 액션이 돋보인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습이지만 바로 그런 과장된 액션을 보는 재미가 ‘스터디그룹’에 있다.
소수의 힘이 아닌 다수의 마음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서사는 ‘스터디그룹’의 핵심이다. 싸움 천재 윤가민의 옆에는 친구들과 좋은 어른이 버티고 있다. 황민현을 중심으로 신예 이종현, 신수현, 윤상정, 공도유의 반짝이는 활약도 눈에 띈다.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스터디그룹에 합류하고, 이야기는 점차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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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이장훈, 유범상/ 극본 : 엄선호, 오보현 / 원작 : 네이버웹툰 ‘스터디그룹'(글 신형욱·그림 유승연) / 출연: 황민현, 한지은, 차우민, 이종현, 신수현, 윤상정, 공도유 외 / 장르: 학원, 액션, 코미디, 청춘, 성장 / 공개일: 2025년1월23일 / 관람등급: 19세 이상 시청가 / 회차 : 10부작 / 공개 : 티빙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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