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없이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가 독립 애니메이션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라트비아 출신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연출한 ‘플로우’는 지난 6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2024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픽사 ‘인사이드 아웃2’와 디즈니 ‘모아나’, 드림웍스 ‘와일드 로봇’ 그리고 넷플릭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디즈니, 픽사 등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스튜디오 작품과 겨룬 ‘플로우’는 라트비아, 벨기에, 프랑스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370만 달러(54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2억 달러(2930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인사이드 아웃2’와 비교했을 때 소규모 예산이다. 이 때문에 ‘플로우’가 후보에 지명된 것만으로도 반향을 일으켰다.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 직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플로우’는 유일한 피난처가 된 낡은 배로 항해를 시작하게 된 까만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의 모험담을 그렸다. 인간은 등장하지 않고 흔적으로만 존재를 알린다.
장엄하면서도 위대한 자연과 동물들의 감동적이고 스펙터클한 모험을 담은 ‘플로우’는 생존을 위해 서로 도와야 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해 ‘플로우’를 초청한 부산국제영화제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이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플로우’의 수상을 두고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최근 몇 년간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작품들에게 포용적으로 변화한 골든글로브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승리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플로우’는 독립 및 아마추어 애니메이터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료 오픈소스 3D 그래픽 툴인 ‘블렌더'(Blender)로 제작됐다. 블렌더를 활용한 작품이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수상한 건 처음이다. 버라이어티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창작들에게도 성공의 문이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도 덧붙였다.
수상 후 무대에 오른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이 영화는 큰 영화산업이 없는 곳에서 매우 작고 젊지만, 열정적인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서 “라트비아 영화가 여기까지 온 것이 처음이라 우리에게 정말 큰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까지 혼자서 모든 영화를 제작했지만 이번에는 팀과 함께했다. (영화 속)고양이처럼 타인에게 의지하고, 협력하며, 차이를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했다”며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며 영화의 메시지와 자신의 상황을 연결시킨 소감으로 감동을 더했다.
‘플로우’의 수상으로 오는 3월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의 경쟁 판도 역시 바뀌었다. 버라이어티는 “평론가들이 ‘와일드 로봇’과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우세하다고 봤지만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이런 평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카데미 최종 후보 명단은 오는 18일 공개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라트비아 영화 대표로 국제영화제상 부문에 출품된 ‘플로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 장르로 유일하게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등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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