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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시간] 우민호 감독이 밝힌 제작기…왜 안중근이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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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으로 '남산의 부장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우민호 감독. 사진제공=CJ ENM
‘하얼빈’으로 ‘남산의 부장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우민호 감독. 사진제공=CJ ENM

이쯤되면 운명인가 싶다. 4년전 전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혼란했던 시국에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과 만났는데, 이번에는 난데없는 계엄령 사태로 또 한번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신작을 내놓게 됐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으로 돌아오는 우민호 감독의 얘기다.

‘하얼빈’은 숱한 희생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전진하는 안중근과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등으로 시대를 날카롭게 조명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으로 현빈·박정민·조우진·전여빈·박훈·유재명·릴리 프랭키 그리고 특별출연에 이름 올린 이동욱까지 호화 출연진을 갖췄다. 또한 지난 9월 열린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순제작비 265억원을 들인 대작답게 몽골과 라트비아를 넘나드는 글로벌 로케이션 촬영,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업 등으로 주목을 받으며 연말 극장가의 최고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최근 언론에 첫 공개된 ‘하얼빈’은 현 시국을 예견한 듯한 대사와 장면들이 시선을 붙잡았다. 우민호 감독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된 혼란한 시국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러한 때에 영화를 선보이게 된 것에 “이 또한 이 영화의 운명”이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인터뷰를 통해 100여년 전 독립군의 험난한 여정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 들인 노력과 마음가짐에 대해 들려줬다.  

– ‘하얼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우연찮게 안중근 장군의 자서전을 읽게 됐다. 거사를 치를 때 그분의 나이가 30세였는데 그분의 시작은 내가 아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실패자였다. 그분이 실패를 딛고 하얼빈으로 가기까지 여정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에 ‘절대 포기하지 말고 1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끝까지 가야 한다’는 내레이션이 있다. 실제 그분이 한 말씀인데 제 삶에 큰 위로가 됐다. 많은 관객이 함께 힘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그때 하이브미디어코프(제작사)에서 ‘하얼빈’의 대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작자인 김원국 대표에게 감독을 구했는지 물어보니 ‘아직 못 구했다’고 했다. 안중근의 영화를 누가 하려고 하겠나. 그 대본을 받아서 읽어보니 케이퍼무비에 가까운 오락영화였다. 김원국 대표에게 ‘안중근 장군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만들고 싶은데 그게 가능하다면 연출을 하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하얼빈'은 조국 독립을 위해 험난한 여정에 뛰어든 안중근과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진제공=CJ ENM
‘하얼빈’은 조국 독립을 위해 험난한 여정에 뛰어든 안중근과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진제공=CJ ENM

● 포기하고 싶은 순간 박경리 ‘토지’로 읽으며 극복

– 안중근 의사의 존재감, 상징성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때 아내가 ‘좀 쉬면서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소설을 통해서 독립군이 활약하는 모습을 읽으며 ‘우리 민족의 생명성은 모질구나, 짓밟히고 또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꺾이지 않는구나’를 느끼며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는 독립군의 이야기로 시나리오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 안중근 장군 역의 현빈이 부담감에 여러 차례 고사를 했는데도 현빈을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그리고 싶었던 안중근은 ‘영웅 안중근’이 아니었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 하얼빈까지 가는 여정 속의 고뇌, 번뇌, 두려움, 고독, 쓸쓸함을 그리고 싶었다. 현빈의 눈빛에서 그런 것들을 봤다. 쓸쓸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유약해보이기도 한데 뭔가 결심했을때 누구도 꺾지 못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캐스팅했다.”

“현빈이 거절할 때마다 시나리오를 계속 고쳐서 보여줬다. 사실은 크게 고치지는 않았지만. 안중근 장군이 영화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하라’고. 그런 마음으로 현빈이 한다고 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웃음)

– 언론배급 시사회 후 프로덕션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신아산 전투 장면은 굉장히 공들여서 처절하게 촬영한 것 같다.

“이 작품은 가능한 시나리오, 콘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감을 많이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세트보다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했다. 로케이션 촬영을 하면 사실 통제가 어렵다. 그렇지만 자연광을 담기 위해 빛을 기다리면서 촬영했다. 신아산 전투 장면을 광주에서 촬영을 했는데 눈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날 40년 만에 폭설이 내렸고 그 속에서 찍었다.”

“촬영을 하면서 ‘우리나라 자연과 국토가 이렇게 아릅다구나’를 느꼈다. 그 당시에는 다 빼앗겼던 거였다. 국권·주권·자유 그 당시에 있었던 동식물 모두. 전쟁이 나면 다 파괴되는 거니까 전투신을 통쾌하게 못 찍겠더라. 이기든 지든 그 자체가 비극이고 그래서 처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아산 전투 장면. 사진제공=CJ ENM
신아산 전투 장면. 사진제공=CJ ENM

● “안중근과 독립군의 이야기, 우직하게 찍고 싶었다”

– 신아산 전투를 비롯해 매 장면을 그렇게 공들여 찍다 보니 한편으로는 서사가 늘어지는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

“우직하게 가고 싶었다. 실패를 반복해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우직하게 걸어가는 안중근과 독립군처럼, 그런 톤을 유지하고 싶었다. 편집도 빠르게 하지 않고, 커트도 다른 영화들보다 적다. 클래식하게 찍으려고 했다. 촬영도 요즘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3대씩 돌려서 빨리빨리 찍는데 우리 영화는 폭파신 빼고는 한 대의 카메라로 찍었다. 그분들의 마음과 정신을 담는데 정적인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들은 숏폼에 익숙한데 이번 영화는 거기에 반해서 영화적으로 고전적으로 찍으려고 했다. 클래식한 스타일이 안중근과 독립군의 얼굴과 정신과 마음을 숭고하게 담기에 적합하다 생각했다. 작은 화면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비주얼과 사운드, 음악 등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작품이다. 지금 젊은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 실존 인물,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캐릭터도 그렇고 사건도 그렇고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다. 흔히 말해 신파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다. 신파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 작품이 어떤 감정을 터뜨려내기보다는 마음 속의 울림으로 오랫동안 남았으면 해서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우리가 바로 독립을 했다면 통쾌하게 찍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더 힘들어졌다. 마지막 안중근의 얼굴도 승리의 얼굴이 아니라 후세,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얼굴이다.”

언론에 첫 공개된 뒤 뛰어난 비주얼과 사운드로 주목받는 '하얼빈'. 사진제공=CJ ENM
언론에 첫 공개된 뒤 뛰어난 비주얼과 사운드로 주목받는 ‘하얼빈’. 사진제공=CJ ENM

– ‘하얼빈’은 12월에 개봉하는 영화 중 제작비 규모가 가장 크다. 영화 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그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할 것 같다.

“대자연 속에서 독립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만주의 땅덩이가 어마어마 한데 땅 한 평도 없는, 다 잃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어땠을지, 또 관객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저는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그 땅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하얼빈으로 가는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우리 영화가 진중하고 묵직하기는 하지만 블록버스터 공식을 따라간다고 다 흥행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영화가 많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도전해야 하지 않나. 저만 결단을 한 게 아니다. 제작사도 투자배급사도 결단을 내려서 가능했던 일이다.”

● ‘아님 말고’ 식으로 제안, 캐스팅돼서 더 놀라 

– 릴리 프랭키는 일본의 대표 배우다. 이토 히로부미 역에 캐스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당연히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연한 작품이(‘어느 가족’)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니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아님 말고’ 식으로 일단 한번 줘보자 싶어서 줬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제가 놀랐다. 알고 보니 릴리 프랭키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좋게 봤더라. 덕분에 작품에 무게감이 실렸다.”

“릴리 프랭키가 연기한 이토는 일본에서는 근현대사를 이끈 위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토를 더 악마화시킬 수 있지 않았냐고 하는데 이 영화는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지만 안중근과 독립군의 정신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토는 저한테는 대상으로서만 필요했지 다르게 고려할 상황은 아니었다.”

일본 대표 배우 릴리 프랭키가 이토 히로부미 역을 연기했다. 사진제공=CJ ENM
일본 대표 배우 릴리 프랭키가 이토 히로부미 역을 연기했다. 사진제공=CJ ENM

–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는 현 시국에도 대입할 수 있는 말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조사를 해보니 실제로 이토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총독부에 마차를 타고 가는데 왕과 유생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저잣거리에 있는 민초의 눈빛이 되게 서늘하고 섬뜩했다는 식으로 말한 게 있는데 거기에서 착안해서 대사를 넣었다.”

–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도 그렇고 ‘하얼빈’이 마치 현 시국을 예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혼란한 시국에 개봉을 하게 됐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남산의 부장들’도 설에 개봉하고 며칠 뒤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병이 확산됐는데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계엄이 선포됐다. 전주에서 다른 작품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이게 말이 되나’ 싶고 끔찍하고 참담했다. 그러면서 느낀 건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또 반복될 수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역사, 특히 비극의 역사일수록 되짚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언론배급 시사회 때에도 독립군에게 고맙고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전날 본 뉴스 화면이 오버랩되면서 울컥했다. 독립운동가의 대부분이 2030대였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목숨을 바쳐가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계엄을 막아내기 위해 국회에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이 영화가 이 시국을 만나서 어떻게 해석될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우민호 감독. 사진제공=CJ ENM
우민호 감독. 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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