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비장의 무기였다. 눈물과 한숨 그리고 한으로 빈틈 없이 채워진 용례의 구슬픈 소리 ‘추월만정’이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안겼다. 용례를 연기한 문소리는 특별출연이면서도 이 한 장면을 위해 무려 1년간 연습하며 실력을 갈고닦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 시선을 끈다.
지난 10일 방송한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에서 정년이(김태리)의 꿈을 마침내 허락하는 엄마 용례(문소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리꾼으로서는 최악의 장벽으로, 지극히 탁한 목소리로 고음을 내지 못하는 일명 ‘떡목’이 되고서도 국극을 계속하기로 다짐한 정년이와 그런 딸의 길을 인정하며 갈라지고 퍼석해진 소리로 한과 울부짖음이 섞인 ‘추월만정’을 내뱉는 용례의 모습이 안방극장을 꽉 채우며 감동을 선사했다.
정년이를 향한 애끊는 모성애를 보여준 용례를 한 서린 소리로 그려낸 문소리의 힘이다. 문소리는 ‘정년이’에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존재감은 주연배우 못지않다.
문소리와 김태리의 모녀 호흡은 ‘정년이’가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2018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서 다소 특별한 모녀 관계를 보여줬다. 극중 문소리는 불쑥 딸 혜원(김태리)을 떠난 평범하지 않은 엄마로, 김태리는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6년 만의 재회에는 김태리의 적극적은 러브콜이 있었다. 지난 9월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 출연한 문소리는 “(용례 역할을)안 하려고 했는데 (김)태리가 자꾸 ‘언니가 엄마 해줘야 된다’고 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해도 될 것 같았다”는 이유로 안 하려고 했지만 김태리와 “다시 만나서 너무 좋았다”고도 회상했다.
그렇게 정년이의 엄마로 특별출연을 결정했지만, 판소리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1년간 연습을 해야 했다. 문소리는 “저는 판소리 한 장면을 한다. 그 장면을 위해서 1년 정도를 연습했다“며 판소리는 “어렸을 때 1년 반 정도 배웠는데, 오랜만에 레슨을 받았다. 1년을 연습하니까 ‘계속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참 좋다”고 이야기했다.
문소리가 언급한 판소리 장면은 10회 마지막을 장식한 ‘추월만정’이었다. 용례는 과거 채공선이라는 이름의 ‘판소리 천재’였으나 ‘떡목’이 된 후 소리를 등지고 살아왔다. 채공선이었을 당시 그가 부른 ‘추월만정’을 두고 허영서(신예은)의 엄마 한기주(장혜진)는 “(다른 소리는)다 가짜 같아서 그 어떤 명창의 소리를 들어도 심장이 뛰질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추월만정’은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이다. 눈먼 아버지 심봉사를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든 심청이 용궁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와 황후가 된 후 혼자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내용이다. 이에 용례는 ‘추월만정’을 부르며 자신을 끔찍하게 아낀 아버지(이덕화)를 떠올렸고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문소리의 ‘추월만정’을 들은 누리꾼들은 각종 SNS에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소리를 딸을 위해 피를 토하며 끄집어 내는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년이’ 최고의 명장면” “소리가 매끄러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등 뜨거운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앞서 김태리는 제작진을 통해 ‘정년이’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모녀관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고, 쉽지 않은 일출 촬영이었는데 다행히 산 너머에서 해가 떴고 그때를 배경으로 찍은 아름답고 소중한 장면”이라고 떠올렸다.
문소리는 복잡다단한 인생을 살아온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녹인 뛰어난 연기력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했고, 덕분에 ‘정년이’ 10회는 14.1%(닐슨코리아·전국기준)를 기록하며 최고 시청률을 새롭게 갈아치웠다.
문소리는 “과거 극단에 있었는데 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관둬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 접어지지 않아서 몰래 이것저것 배우고 있어야겠다 싶어 학교 졸업하기 전에 판소리를 배웠다”면서 “이번에 써먹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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