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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이름, 정년이] ‘천재’ 윤정년 VS ‘노력파’ 허영서,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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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년이’의 두 주인공. 윤정년 역의 김태리(왼쪽), 허영서 역의 신예은. 사진제공=tvN

매란국극단의 두 연구생 윤정년(김태리)과 허영서(신예은).  두 사람은 삶과 사람을 대하는 성격과 스타일,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식까지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늘 으르렁거리는 앙숙의 관계인 이들의 대결 구도는 tvN 금토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의 중심 서사를 이룬다. 동시에 드라마가 후반부로 향할수록 캐릭터마다 고유한 이야기가 쌓이면서 보는 이들은 누구 한 명에게만 손을 들어주기보다 응원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라이벌의 경쟁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상대하는 경쟁자는 늘 ‘악역’ 타이틀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정년이’의 주인공 정년이의 상대역인 허영서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거나 음해하지 않는다. 대신 동등한 경쟁자로서 정정당당히 실력을 겨루길 바란다. 때문에 두 캐릭터의 ‘다름’에 집중하는 것이 ‘정년이’를 재미있게 시청하는 또 요소를 이룬다.

그렇다면 두 캐릭터의 매력은 무엇일까.

●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윤정년 VS 이성적으로 실행하는 허영서 

우선 두 캐릭터는 성향의 차이가 뚜렷하고 명확하다. 정년이 주어진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거리로 뛰어나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려 한다면, 영서는 대본집에 있는 글자 하나의 의미까지 파고들어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극중 국극 ‘춘향전’에서 방자를 연기한 정년이는 “자신만의 방자”를 찾기 위해 시장통의 사당패를 일주일 동안 따라다닌다. 자연스러운 몸짓과 걸음걸이를 익히기 위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그만의 방식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정년이는 캐릭터 위에 자신의 해석을 덧댄다. 무대 위에 오른 정년이는 이몽룡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저잣거리의 뜬소문을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방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극중 국극 ‘춘향전’ 무대에 오른 정년과 영서.(위부터) 사진제공=tvN

같은 작품에서 이몽룡 역을 맡은 영서는 오랜 연습을 통해 대본 속 모든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끝냈다. 매란국극단 연구생들의 ‘춘향전’ 연습에서 정년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사 그대로를 읊어대자 그는 순식간에 눈빛을 바꿔 방자로 변모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르지 않는 영서 입장에서 정년이의 대책 없는 태도는 못마땅하다. 정년이 자신만의 방자를 찾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나타나지 않자 1인 2역을 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마련했을 만큼 치밀한 성격이다. 

1950년대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만큼 다양한 무대를 재현하는 ‘정년이’에서 국극 ‘자명고’는 정년과 영서의 간극을 더욱 넓히는 지점이 된다. 모든 연구생들의 예상을 깨고, 정년이는 ‘군졸1’로 오디션을 보고, 영서는 ‘가다끼'(남역 조연으로 악역을 뜻하는 여성국극 은어) 고미걸을 선택했다. 표면적으로 역할은 다르지만, 목적은 동일하다. 극의 중심이 되기 전에 주변 인물이 되어 시야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향은 연습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도 거리로 뛰쳐나간 정년은 군졸다운 외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남학생의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따라 침을 뱉어보기도 한다. 반면, 영서는 여전히 ‘완벽’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구슬아기를 맡은 홍주란(우다비)에 의해 변화한다. 남들에게 자신의 연습을 보여주길 극도로 꺼리던 영서는 상대 배역과 교감과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정년은 촛대(무대에서 대사가 없는 단역)인 군졸을 맡았지만, 감정의 밑바닥까지 끌어올려 연기하는 방식 탓에 주인공들보다 더 주목을 받아 무대의 흐름에 지장을 준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거리에서 만난 참전 군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극에 없던 적벽가의 ‘군사설움’을 열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다친 주란을 대신해 올라간 ‘자명고’ 무대에서 구슬아기를 연기하며 ‘비워내는 연기’에 이른다.  

국극 ‘자명고’ 오디션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윤정년(위)과 허영서. 사진제공=tvN

이 같은 두 캐릭터의 성향은 이를 연기하는 실제 배우 김태리·신예은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드라마를 위해 소리를 연습한 두 배우의 접근 방식은 정년이와 영서를 닮아 있다. 김태리는 정년이처럼 감각적으로 듣고 소리를 따라 하며 재미를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신예은은 처음 소리를 배우면서 ‘왜 이런 방식인지’ 근본적인 과정을 묻고 답하며 배웠다. 

● 유명한 ‘어머니’의 그림자를 벗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

두 캐릭터는 공교롭게도 ‘유명한 어머니’ 아래서 자라났다. 그 탓에 부담을 느끼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도 상반된다.

정년은 전남 목포에서 바지락을 캐며 생계를 유지하는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라났다. 간간이 소리를 하면서 돈을 쉽게 벌고 싶지만, 어머니(문소리)는 그런 정년을 나무란다.

그의 어머니는 과거 제일 가는 판소리 명창 채공선이다. 하지만 소리꾼으로 성장해가면서 아픔을 겪었고, 결국 어머니는 소리를 버리고 평범한 삶을 택했다. 그렇기에 딸 정년이 꿈꾸는 예인의 길을 인정할 수 없다. 훗날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정년은 어머니를 뛰어넘기 위해 본격적인 단련에 나서고 있다.

영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장혜진)의 딸이자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은 언니 탓에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지 못했다. 하물며 어머니와 언니가 선택한 성악이 아닌 국극의 길로 가면서 더욱 인정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 눈빛 한 번에 영서는 늘 조마조마하고 흔들린다.

영서는 그래서 가족 특히 어머니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정년은 뒤늦게 어머니의 명성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머니와는 다른 길을 가려 한다. 정년은 무너진 영서에게 “채공선은 채공선이고, 윤정년은 윤정년이란 거여. 엄니 그늘에 가려지는 거 무섭다고 그만둘 거 아니믄, 난 앞만 보고 내 길을 갈 수밖에 없어. 그란께 너도 앞만 보고 가”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어머니의 명성에 가려질까 부담을 느끼는 두 사람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은 다른 형태지만 그 본질적인 모습은 닮았다. 

정년(위)과 영서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 사진제공=tvN

● 라이벌로서 정정당당하게 맞붙다

라이벌 관계인 정년과 영서는 서로의 재능에 질투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실패를 바라지는 않는다. 동등한 조건에서 대등하게 실력을 겨루기를 바란다. 

드라마 ‘정년이’가 그려가는 정년과 영서의 ‘다름’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요인이다. 1등과 2등이라는 순위 매기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각자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정당한 서사를 부여하며 시청자의 공감을 얻고 있는 셈이다. 

영서가 평면적인 성격의 악역이 아니라는 점도 극적 흥미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주인공이 고난에 빠지도록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정년에게 오히려 도움을 준다. 소품 창고에 갇힌 정년을 구해주고, 목이 터져라 연습하는 정년의 아픔을 이해하려 한다. 필시 정년이가 없다면, 조금 더 쉽게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영서는 야비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연습을 하며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것에 열중할 뿐, 상대의 실력을 그것대로 인정하고 자신만의 길로 나아간다.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성장해 나갈지가 드라마의 흥행 여부를 가름할 관건이 될 전망이다. 12부작인 드라마는 지난 3일 9화까지 방송했다. 정년이가 국극 ‘온달과 공주’ 오디션에서 각혈을 하면서까지 열정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정년이가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라이벌인 영서가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 시청자의 궁금증도 커진다. 

해랑 선배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간 정년을 설득하기 위해 찾은 영서. 사진제공=tvN
해랑 선배(김윤혜)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간 정년을 설득하기 위해 찾은 영서. 사진제공=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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