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습생 아니면 지드래곤으로 20년 넘게, 권지용으로 산 건 4~5년밖에 안 돼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빅뱅 앨범이든 솔로 앨범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냈어요. 다 이 안에서 해결하니까 제 세상이 여기인 거예요. ‘트루먼 쇼’가 이런 느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가수 지드래곤이 최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영화 ‘트루먼 쇼’를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으며 한 말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미디어에 노출된 삶을 살아온 자신을 트루먼에 빗댄 것이다.
피터 위어 감독의 1998년 영화 ‘트루먼 쇼’는 일상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코미디 연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짐 캐리가 주인공인 트루먼 버뱅크를 맡아 코미디 연기 속에 깃든 짙은 페이소스로 깊은 여운을 줬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영화는 매일 아침 이웃에게 살가운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트루먼의 일상을 비춘다. 트루먼이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다니며 매일매일 성실히 살아가는 세상은, 사실은 방송사가 만든 거대한 리얼리티 쇼의 세트. 트루먼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 방송사에 입양돼 쇼의 주인공으로서 1년 365일 자신의 일상이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삶을 산다. 그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감시당하고, 통제돼왔다는 사실을 트루먼만 모른다. 하늘에서 조명 장치가 떨어지고 트루먼에게만 비가 쏟아지는 등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그의 주변 사람들은 쇼에 고용된 배우로서 모른 척 일관한다. 그리고 바깥세상 사람들은 진짜 같은 쇼에 열광한다.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해치는 미디어의 비인간적 속성을 꼬집는다. 동시에 영화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선동되는 대중의 민낯도 들춘다.
지드래곤이 예능에서 자신의 인생을 ‘트루먼 쇼’에 빗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드래곤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5년, YG엔터테인먼트에서 6년, 총 11년의 시간을 연습생으로 보내고 2006년 빅뱅이란 그룹으로 데뷔해 18년간 활동하면서 지드래곤이라는 이름으로 20년 넘게 지냈다. 트루먼과 달리 자신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무대와 작업실에서 보내며, 또 긴 시간을 미디어에 노출된 삶을 살며 “나는 누구지?” “나는 행복한가?”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지드래곤은 데뷔 때부터 각종 소문과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 지난해에는 마약 투약 누명까지 쓰는 악재도 있었다. 당시 그의 이름이 공개된 후 의혹을 사실처럼 단정짓는 듯한 무분별한 보도와 악의적 글들로 온라인은 도배됐다. 지난해 12월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사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마무리됐으나 지드래곤 측은 “근거 없는 말 한 마디로 제기된 부정적 이미지 형성, 정신적 피해 등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크다”며 “사실이 아님에도 확증처럼 퍼져나가며 개인의 인격이 무참히 짓밟혔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음을 호소했다. 지드래곤이 지난 달 31일 7년 만에 발표한 신곡 ‘파워’에서 미디어의 힘을 풍자한 배경이다. ‘파워’ 뮤직비디오 역시 지드래곤을 카메라에 담는 미디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트루먼 쇼’의 백미는 엔딩이다. 트루먼이 자신이 나고 자란 세계(세트)를 떠나는 장면이다. 그가 물에 대한 공포를 견뎌내고 배를 몰아 이른 곳은, 지금까지의 인생이 가짜였음을 확인시키듯 또 다른 육지가 아닌 막다른 벽(세트). 계단을 올라 문을 열어보니 바깥세상이 그렇다고는 것을 암시하듯 문밖은 온통 어둠뿐이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방송사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진짜 인생을 찾아 문밖으로 발길을 옮긴다. 카메라를 향해 웃으면서 “굿 애프터닝, 굿 이브닝, 굿 나이트”를 남기고. ‘파워’ 뮤직비디오 엔딩은 지드래곤이 세트 문밖으로 나가면서 끝나는데 이 장면이 ‘트루먼 쇼’의 엔딩을 연상시킨다.
‘파워’ 뮤직비디오는 공개 4일째인 4일 기준 조회수 1500만회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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