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로 시작해서 늘 선배님들의 어린시절을 연기하다가 시호(배역)를 통해서 제 배역을 연기할 수 있어서 작품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지난 달 16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이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큰 밑거름이 돼줄 것 같다”면서 올해 열일곱 살로 고등학교 2학년인 청소년 배우 김정철이 한 말이다. 김정철은 극중에서 장동건과 김희애의 고등학교 2학년 아들 시호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얼굴은 낯설지만 사실 2016년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9년차의 ‘짬밥’ 있는 배우다.
김정철은 2016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의 신구와 2017년 드라마 ‘투깝스’의 김선호,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의 임시완까지 다수의 작품에서 주로 성인 배우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그러다가 ‘보통의 가족’에서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아닌 자신만의 배역을 꿰찼다.
김정철은 최근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4차에 걸친 오디션 끝에 ‘보통의 가족’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펑펑 울었다”는 말로 합격 당시의 기쁨을 전했다.
“마지막 오디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호가 턱걸이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님이 철봉에 매달리는 모습을 연기해 보라고 하셨죠. 디테일한 장면까지 놓치지 않는 감독님을 보면서 엄청 꼼꼼하시다고 느꼈습니다. 아쉬움도 남지 않을 만큼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연락이 올 때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합격 소식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보통의 가족’은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를 수습하는 방식을 놓고 갈등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시호가 사촌인 혜윤과 함께 노숙자를 폭행해 중태에 빠뜨리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 촬영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정철은 유약한 얼굴 뒤에 서늘함을 감춘, 부모는 모르는 자녀의 두 얼굴로 흥미로운 반전을 선사한다.
영화는 각 인물에 대한 전사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들의 변화와 그 동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데에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해석력이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다. 허진호 감독은 촬영 전에 배우와 대화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호는 정말 어떻게 생각할까?” 현장에서 김정철이 감독에게 자주 들은 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김정철은 난생 처음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시호에게 폭력성이 내재하게 된 성장 배경과 더불어 이중성을 드러내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김정철에게는 장동건, 김희애와 호흡을 맞춘 것도 의미가 컸다. 두 사람의 경력도 경력인 데다가 톱배우로 불리는 선배들이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도 현장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두 선배님과 촬영을 할 때에는 정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걸 아셨는지 쉬는 시간에 농담도 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셔서 긴장을 풀 수 있었어요. 시호가 아버지와 싸우는 장면에서 장동건 선배님은 감정선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저한테 맞춰주셨고, 김희애 선배님은 쉬는 시간에도 몰입하고 연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보통의 가족’이 김정철에게 특별한 이유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 마음을 다잡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며 “평타”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는 김정철은 이 작품을 계기로 예술고가 아닌 일반고에 진학, 하루 3~4시간만 잠자며 학업에만 집중한 끝에 전교 1등을 차지했다.
“‘보통의 가족’을 찍고 나서 깨달은 게 있었어요. 자식의 문제로 부모의 갈등이 드러나는 작품이잖아요. 지금도 부모님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부모님 속 썩이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겠더라고요. 부모님과 상의해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학업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정철은 대학에서도 연기보다는 정치나 외교, 다른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려서부터 배우를 꿈꿔왔고 지금도 배우 외에 다른 진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다양한 경험이 연기를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연기는 대학 진학 후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점점 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보통의 가족’을 하면서 잠깐이나마 감정을 몸으로 표현할 기회가 있었는데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액션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액션뿐 아니라 작품마다 새로운 연기를 탐구하는 열정적인 배우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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