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라며 일갈한 서도철 형사를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베테랑2’가 개봉 이틀 만에 12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추석 극장가를 단숨에 장악한 걸 보면 말이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베테랑2′(제작 외유내강)는 2015년 개봉해 1341만명을 동원한 ‘베테랑’의 속편이다. 돌아온 ‘베테랑’은 선과 악의 명확한 대결, 악당을 제압하는 카타르시스를 무기로 한 전편과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영화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쫓으면서 거대한 비밀을 마주하는 내용이다. 연쇄살인범은 사법체계를 무시하고 피해자가 당한 방식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한다. 형사들에게는 그저 범인이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정의구현이 이뤄졌다”며 그를 응원하고 ‘해치’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베테랑2’는 ‘솜방망이 처벌’ 등 사법체계의 빈틈과 조회수 때문에 사실 검증 없이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 사이버 레커(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일부 유튜버를 지칭하는 용어) 등을 끌어와 연쇄살인범을 영웅시하는 사회에서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다’라는 철칙으로 움직인 서도철(황정민)은 ‘해치’의 사건을 접하며 한층 복잡해진 내면을 드러낸다. 단순 명확했던 기존 빌런과 달리 ‘해치’로 사적 제재를 가하는 박선우(정해인)는 복잡 미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악당이지만, 그가 살인하는 대상이 사회가 사실상 내버려둔 악랄한 가해자들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한다.
액션은 더욱 진화했다. ‘액션 키드’의 연출작답게 다양한 액션 장면들은 두 눈을 사로잡는다. 남산 계단에서 펼쳐지는 추격 액션과 서도철 일행이 폭우가 내리는 건물의 옥상에서 벌이는 격투 장면은 유려하며 박진감 넘친다.
‘베테랑2’ 개봉을 기념해 류승완 감독이 인터뷰를 갖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최대한 반영해하기 위해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나의 분노는 정당한가?” 류승완 감독의 질문
▲ 1편의 미덕이었던 명확한 선과 악의 구도를 무너뜨린 이유는?
“1편은 400만명만 넘어도 큰 성공이었다. 그런데 목표했던 관객의 세 배가 넘는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고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영화의 특정 대사나 장면들이 ‘밈’으로 활용되거나 뉴스에도 나오면서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됐다. 1편은 제 안에 쌓인 분노가 출발이었다. 영화를 통해서라도 복수의 쾌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뒤 비슷하게 어떤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 살의까지 느꼈다. 그런데 뒤에 가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일도 있었다. 전달받은 정보만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평가했던 거다. 내가 놀랐던 건 가해자가 뒤바뀐 상태에서 감정의 온도가 떨어지고, 내 자신이 반성보다 보호벽을 쳤다는 거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노가 정당한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분노가 일어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 정의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있었는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고한 신념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무지성으로 신념과 정의를 갖는 게 정말 무서운 게 아닐까? ‘베테랑’ 시리즈를 통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9년 전 극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성장했을 거고, 1편을 극장에서 안본 세대들은 이 질문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그래서 ‘빌런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은 영화’로 설계한 것인가?
“선악 구도를 무너뜨렸다. 기자간담회 때 정의와 신념의 대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일반적인 대결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도철 개인의 싸움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선악 구도의 대결이라면 빌런으로 선정한 대상을 쥐어박고 처벌하는 게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서도철이 갈등을 겪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스스로와 대결을 하는 것이다. 빌런은 서도철의 선택을 어렵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통쾌하게 악을 응징하는 것보다 (서도철을 통해)우리가 악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맞는지 질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빌런이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거다.”
▲ 솜방망이 처벌, 사이버 레커, 사적 제재, 학교 폭력, 마약 문제 등 현재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녹인 배경은?
“특별히 사회현상이나 어떤 이슈에 대해 관심이 더 깊어지거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다. 벌써 15년 정도가 됐는데 2010년도 개봉한 ‘부당거래’는 언론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연출한 작품은)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저의 시선이 담겼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 시선이 보다 또렷이 드러나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거 같다.”
▲ 서도철의 복잡한 내면을 거울 속에 비친 박선우, 그림자 등을 통해 드러내는데.
“서도철은 말도 험하고 욕도 한다. 나쁜 놈들을 쥐어박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하지만 잘 보면, 지켜야 하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다. 자신은 어떤 선을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1편에서)폭력의 근거를 마련한 뒤 (조태오에게)폭력을 하지 않나. 그렇지만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서도철은 자신의 촉과 감으로 수사하는데, 자신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그 판단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거다. (2편은)직업인 서도철의 직업윤리를 돌아본다. 해치가 아니었다면 서도철은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이 있어?“라는 생각의 정리도 없었을 것이다. 손에 닿지 않는 유형의 범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지막에 아들에게 사과까지 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거다.”
▲ 박선우의 서사가 거의 없는 건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빌런의 서사를 세팅하는 건 장르영화 문법에서 중요하지만, 그걸 버렸다. 그것보다 서도철의 성장과정이 중요했다. 그가 갈등과 서스펜스를 딛고 일어섰을 때의 박진감을 보여주고자 했다. 빌런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궁금증을 해소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선택했다. 왜 박선우가 해치가 됐는지에 대한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런데 빌런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건 (우리 영화가)가야 하는 방향과 어긋난다고 봤다. 초반부터 해치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이 영화는 절름발이가 범인(‘유주얼 서스펙트’ 내용)류의 영화가 아니다. 1편과 다른 톤앤매너로 영화의 판을 벌였다.”
●’보는’ 영화를 넘어 ‘체험하는’ 영화로서의 강점
▲ 폭우 속에서 슬라이딩을 하며 서로에게 강렬한 펀치를 날리는 옥상 격투 장면은 ‘액션키드’인 류승완이라서 선보일 수 있는 시퀀스처럼 보이더라.
“눈, 비 등 액션에 자연의 요소가 개입되는 걸 좋아하는데, 많이 해보지 못해 항상 갈증이 있었다. 액션에 자연요소를 끌어와 예술적으로 표현한 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바람마저도 통제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정말 추울 때 찍었는데, 그 장면의 처절함과 치열함이 추위를 뚫고 나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격투 장면은)영등포 시장 한복판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 찍었다. 요즘 건물은 배수가 잘 돼서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차오르지 않는다. 일부로 배수구를 막고 모래주머니를 쌓은 뒤 낮부터 물을 뿌렸다. 빗속 액션의 철벅거림은 유상섭 무술감독의 공이 크다. 슬라이딩을 하면서 펀치를 하는 액션 디자인은 처음 보는 스타일이라서 너무 신이 났다. 준비하면서부터 이거는 재밌게 나오겠다고 확신했다. 춥고 물속에서 찍어서 배우들이 방수 슈트를 입어야만 했다. 몸의 움직임이 둔해져 배우들이 힘들었지만, 큰형님인 황정민 선배가 투덜투덜 대면서도 파이팅 있게 이끌어줘서 잘 끝이 났다. 하하.”
▲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달라진 지점이 있는가?
“칸 버전에서는 쿠키영상이 없었다. 내용이 달라진 건 없지만, 여러 포맷 작업을 진행했다. 아이맥스, 4DX, 돌비 시네마(돌비 비전+돌비 애트모스)로 개봉을 한다. 음향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 작업은 해봤는데, 시각 기술인 돌비 비전은 처음이었다. 아이맥스의 장점이 압도감과 사운드의 파워라면 돌비는 섬세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만약 돌비 시네마관에서 들으면 보조출연자들의 대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돌비 시네마관에서만 섬세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것인가?
“일반관에서도 (사운드를)체험할 수 있게 디자인 믹싱이 잘 돼 있다. 그런데 돌비 시네마관에서 경험했을 때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별관마다 장점이 다른 거 같다. 4DX관 후기를 보니까 (폭우 장면에서)물을 시원하게 뿌려준다고 하더라.(웃음)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곧 경험해 보려고 한다.”
●’베테랑3’에 대해…”계속 얘기나누는 중”
▲ 서도철은 ‘서민의 영웅’이지 않나. 시리즈가 앞으로 진행될 때 이 점은 놓고 싶지 않은 지점인가?
“특별한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마지막에 서도철은 집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회복하지 않나. 서도철이 지키려고 했던 건 세계 평화가 아니라 피곤한 자신의 일상이다. 월세를 내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각자가 치열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삶은 응원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원칙을 지키고,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의 태도는 고귀하다.”
“서도철은 거칠다. 하지만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주변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삼촌 같은 사람이다.”
▲ 쿠키영상을 통해 속편을 예고했다. 3편 가능성은?
“황정민 선배와 계속 얘기하고 있다. 3편에 대한 구체적인 트리트먼트가 나와있는 것도 있다. 해치의 탄생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시나리오도 있는 상태다. 잘 안 되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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