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은 4년 전 오승욱 감독에게 “밝고, 경쾌하고, 통쾌한” 작품을 제안했다. 당시 “뭐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오승욱 감독도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년 뒤 ‘리볼버’ 시나리오를 받은 뒤 전도연은 생각했다. “감독님은 밝고 경쾌하고 통쾌한 것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촬영을 했고,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리볼버’를 보고 당황했다. “우리 작품이 이렇게 재밌는 영화였어?”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는데 블랙코미디가 있더라”면서 “‘리볼버’가 이런 영화였구나 싶었다. 저도 영화를 굉장히 새롭게 봤다”고 감상을 밝혔다.
●”단순한 ‘리볼버’를 채운 건 배우들의 연기”
오는 7일 개봉하는 ‘리볼버'(제작 사나이픽처스)는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이 ‘무뢰한'(2015년) 이후 재회해 9년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큰 보상을 약속받고 경찰 조직의 비리를 뒤집어쓴 전직 형사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약속한 돈을 받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야기다.
‘무뢰한’은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41만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지만, 관객들 사이에서 ‘무뢰한당’이라는 열혈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전도연은 ‘리볼버’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무뢰한’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자 버전 ‘무뢰한’ 느낌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다”면서 “‘무뢰한’과 비교되지 않으려면 (하수영을)’어떤 인물로 만들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도연은 하수영에 대해 “건조했으면 좋겠고, 감정을 많이 걷어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고충도 있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너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것 같아서 걱정됐죠.”
하수영의 여정을 쫓아가는 ‘리볼버’는 감시자인지 조력자인지 알 수 없는 정윤선(임지연)과 약속을 보상한 앤디(지창욱), 과거 동료 신동호(김준한) 등 여러 인물과 얽히고설켜 누아르와 블랙코미디 등을 넘나들며 ‘리볼버’만의 매력을 형성한다. 수영의 연인이자 상관으로 우정출연한 이정재 역시 미스터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도연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겠더라. 제가 무표정으로 만난 배우들이 영화에 색을 입히고 숨을 불어넣었다”면서 “이 작품은 제가 뭐를 보여주기보다 그들의 색깔을 받아들이면서 다채로운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수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말만 해요. 단순하고 단조로운 이야기에 장르를 가미한 건 배우들인 것 같아요. 오승욱 감독님이 ‘리볼버’를 배우들의 향연이라고 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리볼버’가 사랑받지 못하면 속상할 것 같다”
전도연은 ‘무뢰한’을 찍을 당시에는 “오승욱 감독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글이 굉장히 날카로웠는데, 촬영장에서의 모습은 달랐다”면서 “당시 저도 극중 김혜경처럼 날이 서 있어서 감독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무뢰한’을 찍었다”고 고백했다.
“‘리볼버’에서는 감독님이 원하는 걸 다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긴 시간 동안 감독님에 대한 이해도 생겼고, 인간적으로도 편해졌거든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도 쌓였고요. 그리고 이 분이 또 언제 영화를 찍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오승욱 감독 작품의 매력으로 “기교 없이 투박하고, 잔재주 안 부리고 묵직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라고 꼽은 전도연은 “‘리볼버’를 보니까 또 새로웠다. 그래서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속이 상할 것 같다”고도 했다.
●”내가 가지고 누리는 것들, 영원하지 않더라”
오승욱 감독에게 작품을 제안한 4년 전은 전도연이 ‘작품 갈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이기도 하다. 이후 전도연은 영화 ‘길복순'(2023년)과 드라마 ‘일타 스캔들'(2023년) 등 대중 친화적인 작품들을 찍으면서 보폭을 넓혔다. 지난 7월 막을 내린 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
“솔직히 작품에 대한 갈증은 ‘벚꽃동산’으로 해소가 됐어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니거든요. 제 만족도 중요했는데, ‘벚꽃동산’이 그걸 채워줬어요. 무섭고 두려웠지만,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죠. 그러면서 무대도 사랑하게 됐어요.”
초연을 마친 ‘벚꽃동산’은 해외 투어 일정도 예정됐다. 전도연은 “3월 호주 공연은 정해졌는데, 그 이후는 스케줄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밀양'(2007년)으로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오랜 시간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로 불리고 있는 전도연이지만, 작품 제의가 들어오지 않으며 “터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시간을 이겨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말에 전도연은 ‘식물’ 이야기를 꺼냈다.
“식물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은 거 같은데, 봄이 되면 새싹이 피고, 만개하고, 겨울에는 또다시 져요. 저 자신도 그렇지 않을까요?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지고, 그 시간을 보내면 새로운 작품을 만나죠. 예전에는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들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찰나였고 순간이었죠. 앞으로도 그런 순간들의 연속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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