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오스카 관람 포인트] 놀란 감독의 설욕 VS ‘광기의’ 엠마 스톤 2관왕?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스카 무관’의 설움을 이번에는 설욕할 수 있을까. 배우 엠마 스톤은 2017년 ‘라라랜드’에 이어 30대 배우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차지하면서 오래 남을 대기록을 세울까.
이틀 앞으로 다가온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을 둘러싸고 전 세계 영화팬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계 연출자인 셀린 송 감독의 한·미 합작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 국내 영화계와 관객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3월11일 오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케이블채널 OCN을 통해 생중계된다. 시상식을 배로 즐기는 방법?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관전 포인트를 미리 살피는 것부터 시작이다.
최다 노미네이트 작품들부터 배우들의 흥미진진한 대결 구도까지 핵심만 뽑아 소개한다.
● ‘오스카 상복’ 없는, 크리스토퍼 놀란… 이번엔?
올해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은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천재 과학자의 실화를 다룬 ‘오펜하이머’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포함해 13개 부문 후보다.
10편이 겨루는 작품상 수상보다 더 주목받는 부분은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할지 여부다. 놀란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플라워 킬링 문’)부터 요르고스 란티모스(‘가여운 것들’), 쥐스틴 트레이(‘추락의 해부), 조나간 글래이저(‘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감독상을 놓고 겨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실력에 비해 ‘상복’이 없었다. 유독 오스카에서는 더 했다.
할리우드 히어로 시리즈를 새롭게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 팬을 사로잡은 감독은 아쉽게도 오스카와 특별한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연출작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아도 오스카 감독상 수상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13개 부문 최다 후보에 올라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을 높였고,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극영화 부문)에서 작품성과 작품상을 포함한 5관왕,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관왕을 싹쓸이했다.
동시에 주인공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의 남우주연상 수상도 유력하게 꼽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인셉션’과 ‘다크나이트’ 시리즈, 전쟁 영화 ‘덩케르크’로 연이어 호흡을 맞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과 발군의 파트너십을 과시하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자 가장 큰 비극을 초래한 발견’을 묵직하고 집요하게 그려냈다.
대대로 미국 아카데미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나 역사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왔다. 이에 가장 부합하는 ‘오펜하이머’는 핵개발을 둘러싼 과학자의 딜레마에 시선을 맞춰 인류에 평화를 가져온 존재가 대재앙의 씨앗이 됐다는 이야기로 확장해 주목받았다. 1950년대 매카시 광풍 등 당대 사회상까지 녹여낸 시도도 돋보인다.
다만 킬리언 머피와 남우주연상을 놓고 겨루는 배우들의 면면은 예사롭지 않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브래들리 쿠퍼, ‘바튼 아카데미’의 폴 지아마티, ‘러스틴’의 콜맨 도밍고 등이 후보다.
● ‘수상 실패’가 오히려 이변…엠마 스톤 여우주연상 예약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눈여겨 봐야 할 또 한편의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이다.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11개 부문 후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연출하는 작품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쓰는 ‘상복 많은 연출자’로 통한다. ‘가여운 것들’은 지난해 열린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올해 골든글로브(뮤지컬코미디부문)에서도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엠마 스톤은 영화에서 괴짜 과학자를 통해 태어난 여자 프랑켄슈타인 벨라 백스터 역을 맡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그가 여러 호기심을 발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기괴하게 펼쳐진다. 엠마 스톤은 그가 아니면 누구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을 맡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영화도, 그의 연기도, 파격 그 자체다.
연기력에 관한한 비교 대상이 없는 엠마 스톤의 발군의 활약은 올해 오스카의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수상을 예고한다. ‘추락의 해부’ 산드라 휠러,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톤 등을 제치고 트로피를 손에 넣는다면 2017년 ‘라라랜드’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저력, 이번에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플라워 킬링 문’도 주요 부문에 두루 이름을 올렸지만 ‘오펜하이머’, ‘가여운 것들’과 비교해 작품에 대한 평가나 수상 가능성을 향한 기대는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관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 ‘현존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20세기 초 석유로 갑작스럽게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대륙 원주민 오세이지족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실화를 그렸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실제 오세이지족 출신의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이 주연을 맡아 당대 원주민이 겪는 비극과 백인 이주민들의 야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작품상과 감독상 등 후보에 올랐지만 최대 관람 포인트는 릴리 글래드스톤의 여우주연상 수상 여부가 꼽힌다. 엠마 스톤과의 빅매치다. 앞서 골든글로브(극영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원주민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이미 세웠다.
● 남우조연상 놓고 겨루는 아이언맨 VS 헐크
올해 남우조연상의 후보들은 주연상 못지 않게 쟁쟁하다. 5명의 후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오펜하이머’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가여운 것들’의 마크 러팔로다.
마블 히어로 아이언맨과 헐크로도 친숙한 이들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선 각각의 영화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과시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 상업성 짙은 히어로 영화부터 독창적인 세계를 펼치는 영화를 넘나드는 맹활약 속에 남우조연상 맞대결이라는 흥미로운 관계로 재회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사실 누가 상을 받는지 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들과 감독이 무대에 올라 꺼내는 이야기들로 더 큰 화제를 뿌려왔다. 시상식은 마치 ‘현재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망라한’ 한편의 거대한 쇼를 방불케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쇼는 이어진다.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영화 ‘바비’의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 인기 DJ 마크 론슨과 함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영화 삽입곡 ‘아임 저스트 켄’을 부른다. 그의 가창력은 ‘바비’ 뿐 아니라 ‘라라랜드’로도 이미 확인됐다.
시상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지난해 남녀 주연상 수상자인 브랜든 프레이저와 량쯔충(양자경)을 비롯해 역대 수상자들인 마허샬라 알리, 니콜라스 케이지, 매튜 맥커너히, 루피타 뇽오, 알 파치노, 샘 록웰 등이 참여한다. ‘듄’ 시리즈의 주인공 젠데이아도 시상식 참석을 예약했다.
●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상 여부
마지막까지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도 있다.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돌아와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놓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과연 또 한번 오스카를 손에 넣을지 여부다.
감독은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미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는 감독이 평생 애니메이션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2015년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감독을 향한 아카데미의 각별한 예우와 신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전쟁과 갈등을 멈추고 평화로 나아가자는 거장의 이야기에 과연 오스카가 다시 한번 응답할까.
물론 긍정적으로만 전망하기는 이르다. 피터 손 감독의 ‘엘리멘탈’ 등과 겨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향한 궁금증이 증폭하는 가운데 전 세계의 시선이 3월11일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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