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 관객을 실망시킨 적 없는 ‘맑은 눈’
“현장에서 소름 돋는 느낌을 받은 배우가 처음인 것 같다. 그가 현장에 나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강제규 감독)
“맑은 눈의 광인 에너지가 있다.” (배우 하정우)
“‘변호인’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송강호)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자주 던져 나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후배다.” (배우 이병헌)
배우 임시완과 영화 작업을 함께 했던 감독과 배우들이 꺼낸 이야기들이다.
기라성 같은 영화 감독, 선배 배우들과 꾸준히 연기 호흡을 맞춰서일까. 임시완이 스크린에서 단 한번도 관객에 실망을 안긴 적 없는 탄탄한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추석 연휴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임시완이 어떤 역할을 맡아도 그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몰입으로 관객에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선사하고 있다. 영화 데뷔작 ‘변호인’에서 일찌감치 검증된 연기력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비상선언’ ‘1947 보스톤’을 거치면서 확실히 증명되고 있다.
● ‘체지방 6%’ 설명만으론 부족한 임시완의 저력
‘1947 보스톤’은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가대표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손기정(하정우)이 자신을 닮은 마라토너 서윤복(임시완)을 지도해 1947년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을 넘어 광복 후에는 미 군정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되려는 이들의 분투가 뭉클한 드라마로 완성됐다.
영화에서 단연 빛나는 인물은 서윤복을 연기한 임시완이다.
서윤복은 아픈 모친을 위해 어릴 때부터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매일 달리고, 성인이 돼서도 오직 돈을 위해 뛴다. 스승 손기정의 눈에는 그런 서윤복이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때문에 둘은 처음부터 반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마라톤으로 뜻을 모은다.
유명세로 친다면 손기정이 압도적이지만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서윤복이다. 관객에 온전히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 역시 서윤복이다.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를 채우는 보스톤 마라톤 장면. 촬영 전부터 혹독한 훈련에 임한 임시완은 “체지방을 6%까지 낮췄다”고 밝히면서 실존인물을 그리기 위한 과정을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임시완의 저력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직접 영화를 관람해야만 임시완이 온 몸으로 구연한 1947년 보스톤 마라톤의 뜨거운 현장의 감동을 확인할 수 있다. 대사가 표정이 아닌 ‘달리는 몸 자체’로 그 인물을 완벽히 표현해낸 임시완의 에너지가 빛을 발한다.
임시완은 1947년 보스톤 마라톤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동양인으로는 처음 금메달을 딴 인물 서윤복에 완벽히 체화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모든 일정을 마칠 때까지 구슬땀을 흘렸다.
“캐스팅되고 나서 서윤복 선생님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니 몸이 굉장히 좋으셨다”고 밝힌 임시완은 “그분의 외형을 따라가는게 역할을 맡은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결국 ‘체지방 6%’는 그 사명감으로 역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은 값진 결실이다.
● ‘비상선언’ ‘스마트폰을…’ 등 악역도 아우르는 대담한 도전
임시완은 2013년 영화 ‘변호인’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미 드라마 ‘미생’으로 연기력은 인정받았지만 영화 주연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 배우 송강호와 고 김영애 등과 호흡을 맞춘 ‘변호인’에서 그는 1980년대 초 군부 독재의 피해자로 분해 결코 표현하기 쉽지 않은 시대의 고통이 녹아든 역할을 소화했다.
‘변호인’이 10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할 수 있던 데는 이야기가 지닌 힘과 송강호라는 배우의 저력도 있지만, 극중 사건의 촉매제로서 관객의 감성을 파고든 임시완의 열연이 결정적이었다.
이후 임시완은 영화를 이끄는 주연으로 도약해 2016년 이한 감독의 ‘오빠 생각’, 2017년 ‘원라인’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이끌었다. 물론 만족스러운 흥행 결과를 얻지 못한 작품도 있지만 배우로 실력을 쌓는 기회가 됐고 연기 변신을 거듭하는 토대도 마련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임시완은 과감하게 악역에도 도전했다.
2022년 영화 ‘비상선언’은 임시완의 진가를 영화계에 비로소 확인시킨 작품.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잔혹한 테러범 역할을 맡고도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다. 함께 출연한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등과 견줘 대등한 활약이었다.
악역 도전은 올해 2월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도 이어졌다. 맑은 눈과 수려한 외모를 내세운 악역 연기가 섬뜩한 광기로 표현되면서 대중을 사로잡았다.
● 이성민부터 송강호, 설경구, 이병헌, 하정우와의 호흡… 성장의 길
임시완은 연기 데뷔작인 ‘미생’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성민을 시작으로 ‘변호인’의 송강호, ‘불한당’의 설경구, ‘비상선언’의 이병헌에 이어 이번 ‘1947 보스톤’에서는 하정우와 작업했다. 오랜 연기 경력과 실력으로 한국영화를 든든하게 이끄는 배우들과 연이어 호흡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실력을 쌓았다.
실제로 임시완은 ‘비상선언’에서 이병헌은 물론 송강호와 전도연에 이르는 배우들과 호흡한 경험에 대해 “나라를 대표하는 배우가 아닌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단한 선배들과 같이 연기한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만족해했다.
‘성실함’은 임시완의 무기다.
하정우는 “임시완을 남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며 “서윤복 역할을 잘 할 수밖에 없는 친구다. 성실한 막내 후배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제규 감독은 “흡입력이 대단하고 워낙 디테일을 잘 살려 연기해서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돌이켰다.
‘1947 보스톤’은 임시완의 존재만으로도 관람할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다.
● 차기작은? 1980년대 코믹 액션 ‘소년시대’
1947년 마라토너의 삶을 완성한 임시완은 다음 작품에서 1980년대를 살아가는 10대 고교생으로 변모한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의 주연을 맡고 시청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소년시대’는 1989년 충청남도를 배경으로 맞지 않고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인 외톨이 병태가 어느날 ‘부여 얼짱’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코믹 액션이다. 주인공 병태 역을 맡은 임시완은 이선빈과 호흡을 맞춰 복고풍 시대물을 완성한다. 연출은 드라마 ‘열혈사제’와 ‘어느날’의 이명우 감독이 맡았다.
영화에서 주로 무겁게 사연 많은 인물을 연기했던 임시완은 신작 ‘소년시대’에서 가벼운 코믹 액션에 도전한다. 관객을 실망시킨 적 없는 임시완의 맑은 에너지가 코미디와 액션에서도 통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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