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빙’ 류승룡 “날 붙잡아준 한 마디 ‘늦게 피는 꽃’이라는 말”
“액션 장면을 보고 애들이 펑펑 울더라고요. 중3, 고3 아들인데, 아이들에게 처음 받아보는 눈빛이었어요. ‘우리 아빠 맞아?’라는 느낌이었죠.(웃음)”
두 아들의 눈물을 쏙 뺄 정도로 배우 류승룡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극본 강풀·연출 박인제)에서 장주원 역할을 맡아 강도 높은 액션 장면을 소화했다. 액션뿐만 아니라 거친 인생을 살아가는 조폭부터 황지희(곽선영)와 애틋한 사랑에 빠진 남자, 김두식(조인성)에게 믿음과 신뢰를 안기는 파트너, 딸 장희수(고윤정)를 위해 희생하는 아빠 등 다채로운 얼굴로 ‘무빙’의 인기를 견인했다.
● “‘무빙’의 가장 큰 초능력자는 황지희”
‘무빙’을 인기리에 마무리한 류승룡을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 속에서 주로 피범벅이 된 모습과 달리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 류승룡은 장주원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장주원은 초능력자로 몸이 아무리 다쳐도 재생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류승룡은 “장주원의 몸은 재생은 되지만 고통은 있고, 상처받고 어린아이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장주원을 보면 방향 없이, 목적 없이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의 영향으로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저는 ‘무빙’ 전체에서 가장 큰 초능력자는 지희라고 생각해요. 주원을 변화시키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시켰으니까요.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연기를 했어요.”
류승룡과 곽선영이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라고 말하거나, 서로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이유가 있었겠죠”라고 담담하게 주고받는 대사는 많은 이들이 명대사로 손꼽았다.
류승룡은 “툭툭 던지는 말에 반응을 해줘서 놀랐다”며 “MZ 세대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거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다들 공감하고 좋아했다. ‘무빙’이 세대 간의 ‘브릿지’ 역할을 한 거 같아서 보람이 있다”고 웃었다. ‘브릿지’는 ‘무빙’의 원작 웹툰 후속 작품이다.
● ‘무빙’은 시리즈물의 ‘토지’
지난 20일 마지막 회가 공개된 ‘무빙’은 디즈니+ 국내 서비스 작품 중 한국과 글로벌 콘텐츠 통틀어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종합 화제성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서 디즈니+ 최다 시청 시간을 달성하는 등 성공을 거뒀다.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다. 그렇지만 류승룡은 처음부터 ‘무빙’의 흥행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빨리빨리, 짧은 작품을 선호하는 요즘, 20회차에 진중한 이야기가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지겨워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토지’처럼(웃음), ‘무빙’을 시리즈물의 ‘토지’라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시리즈 전체를 정주행할 수도 없고, 빠른 속도로 보는 배속도 없으니까 마치 금단 현상처럼 불만도 나왔는데 다행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서사나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면서 봐준 것 같아요. 사실 끝까지 조마조마했어요.”
● “늦게 피는 꽃·끝까지 파보자” 류승룡을 일으킨 말
‘괴물 같은 연기력’으로 이번에도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류승룡은 서울예술대학교 김효경 교수와 이준익 감독의 말을 원동력 삼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제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김효경 교수님이 ‘너는 늦게 피는 꽃이야. 조급해하지 마’라고 말씀해 줬어요. 그 한 마디가 저를 붙잡아줬죠.”
“이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년)을 찍을 때 이준익 감독님께 고민을 토로했는데, ‘땅을 깊게 파면 손은 아프지만 맑은 물이 나와’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때 용기를 얻어 ‘최종병기 활'(2011년)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 ‘7번방의 선물'(2013년)까지 연달아 했어요. 끝까지 파보자, 한계를 두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게 제 연기 모토가 됐고, ‘무빙’도 그렇게 접근했어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해온 류승룡에게도 ‘무빙’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은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렇게 긴 호흡도, 시대와 세대를 그린 것도, 인간의 감정 변화를 쏟아낸 것도 처음이었다”던 그는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현장으로 가는 길이 설레고 행복했다. 지금도 스태프나 배우들이 많이 생각난다. ‘무빙’은 그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결과물이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류승룡은 차기작만 네 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을 비롯해 영화 ‘정가네 목장’ ‘비광’ ‘아마존 활명수’를 차근차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네 작품 모두 건강한 웃음을 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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